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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1500년 세월 오롯이 간직한 '백제의 미소'

국보 제84호 서산 용현리의 마애여래삼존상을 알현하다

2013.12.26(목) 15:13:24 | 윤석천 (이메일주소:dj3637dh2927@hanmail.net
               	dj3637dh2927@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서산 용현리의 마애여래삼존상이라 하면 제일먼저 화두처럼 떠오르는 말은‘백제의 미소’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의 존재가 크다 해도 석조 불상이 과연 얼마나 아름답고 우아하게, 얼마나 품위있고 여유롭게 웃으시길래 고대 국가의 이름까지 대어‘백제의 미소’라고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지난 며칠전 충청도 전 지역에 고르게 눈이 내린 직후 따뜻한 날을 잡아 서산으로 갔더랬습니다.
‘백제의 미소’를 알현하기 이해서였죠.
 

눈내린 가야산 자락

▲ 눈내린 가야산 자락


나무 숲 사이에 멀리 어렴풋이...

▲ 나무 숲 사이에 멀리 어렴풋이...


현지에 도착해서 보니 삼존상이 모셔져 있는 가야산 자락엔 눈이 많이 내렸더군요.
삼존상의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 너머 저만치 산 중턱에 어렴풋이 삼존상을 보호하고 있는 사무실의 기와지붕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입니다.
 

삼존상이 있는 곳에 가기 위한 나무계단 입구

▲ 삼존상이 있는 곳에 가기 위한 나무계단 입구


이제 부처님을 만나뵙기 위한 안내판이 있는 입구를 지나 계단을 타고 오르기만 하면 됩니다.
벌써 마음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중간에 있는 돌탑에서바라본 아랫쪽

▲ 중간에 있는 돌탑에서바라본 아랫쪽


올라가는 도중에 만난 돌탑입니다.
가족, 친구, 이웃, 직장의 모든 지인들과 나라와 국민들의 안녕을 비는 마음을 담아 누군가 차곡차곡 쌓아 놓은 돌탑.
잔설이 조금 남아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삼존상 보호사무실 앞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

▲ 삼존상 보호사무실 앞에 세워져 있는 출입문


삼존상 안내문

▲ 삼존상 안내문


드디어 입구에 도착. 이 문만 지나면 진정 백제의 미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카메라를 다잡은 손이 살짝 떨립니다. 저도 오늘 이 3부처님께 이것저것 소원도 빌어보고 돌아올 참입니다.
오른쪽 옆에는 자세한 안내 설명 간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저만치... 국보 제 84호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보입니다

▲ 저만치... 국보 제 84호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보입니다


아,  저만치 삼존상이 보입니다.
저 바윗돌에 모셔져 천오백년 세월동안 온화하게 이 땅을 굽어 살펴주신 부처님이 계십니다.
 

1500년 세월동안 그 미소를 잃지 않으신채...

▲ 1500년 세월동안 그 미소를 잃지 않으신채...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가슴이 더 콩닥거립니다.
드디어 제가 국보 제 84호 백제의 미소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을 뵈었습니다. 그동안 책에서만 보고 말로만 듣던...
국보로 지정되어 있기에 관리나 유지가 다른 문화재와는 격도 달랐습니다.
 

나라의 태평성대와 국민들의 안녕을 지켜주시며...

▲ 나라의 태평성대와 국민들의 안녕을 지켜주시며...


과연 직접 뵈온 삼존상은 백제의 천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온화한 미소로 중생을 맞아주시더군요. 진정 그 미소 속의 푸근함과 자애로움이 '백제의 미소'라 불리워지는데 너무나 당연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백제시대의 화강석 마애불상. 가야산 계곡의 층암절벽에 조각되어 있고 제작연대는 백제 후기에 해당하는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만든 것이라 합니다.
 

가운데 본존인 석가여래상

▲ 가운데 본존인 석가여래상


반가사유상

▲ 오른쪽 반가사유상


왼쪽 보살입상

▲ 왼쪽 보살입상


가운데에 본존인 석가여래입상이 있고, 양쪽으로 보살입상과 반가사유상이 있습니다. 세 불상 모두 둥근 얼굴 가득한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데, 당시 백제인의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합니다.
 
삼존형식으로는 이례적으로 반가상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마애삼존불이 벼랑에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6세기 말엽 백제는 장수왕의 남하로 한강 유역을 잃게 되었습니다. 고구려와 관계가 좋을 때는 육로를 통해 중국과 교류했지만, 한강 유역을 빼앗기자 바닷길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찾아낸 곳이 바로 당진과 태안 지역으로, 중국의 산동반도로 가기에도 요긴한 곳이었답니다. 당시 백제에서 배를 타고 중국을 드나들던 스님이나 상인들이 인근의 보원사에 머물면서 가야산 계곡 벼랑에 이 마애불을 조성했다고 하네요.
 
위험천만했던 바닷길로 중국을 다녀와야 했던 당시 사람들이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벼랑 높이 불상을 새겨넣음으로써 자신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했던 것이죠.
 

삼존상이 모셔져 있는 바윗돌 위에서 묵묵히 이를 지켜온 소나무 한그루

▲ 삼존상이 모셔져 있는 바윗돌 위에서 묵묵히 이를 지켜온 소나무 한그루


최고의 예술적 감각을 지닌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그 미소와 섬세함은 천오백년이 지난 오늘에도 살아 숨쉬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삼존불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부처님의 근엄함보다는 친절한 이웃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가운데의 석가여래상과 친근한 이모님과 고모님 같은 양쪽의 보살입상과 반가사유상.
1500년동안 미소를 잃지 않고 이렇게 우리에게 친근하면서도 웃음 가득한 모습들이 맞이해 주셔서 얼마나 고맙던지요.
 

삼존상과 지근 거리 길가에 세워져 있는 강댕이 미륵불

▲ 삼존상과 지근 거리 길가에 세워져 있는 강댕이 미륵불


로

▲ 근처 보원사지에서 나온듯 하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강댕이 미륵불이라는 불상을 하나 더 만났습니다. 삼존여래상과는 직선거리로 1km도 안되는 곳의 길가에 세워져 있는 불상인데 고려와 조선초 사이에 만들어진걸로 보고 있습니다.
 
근처 보원사지 절터가 있는데 거기에서 만들어진게 유실됐다가 발견되어 이곳에 모신거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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