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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박동진 판소리 명창 명고대회 대상 현미씨(명창부)와 고정훈씨(고법부)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박동진 선생 생애를 조명하며(명창 명고대회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2013.07.22(월) 03:03:07 | 임정화 (이메일주소:dsfjkjfsjf@hanmail.net
               	dsfjkjfsjf@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당대의 유명한 카피중 이거 웬만한 성인이라면 다들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명창이신 박동진 선생이 하신 광고 카피였습니다. 물론 이 말의 쓰임새는 광고용이었지만 이 말과 박동진 선생이 가지고 계신 특징적 이미지는 너무 잘 맞아 떨어졌기에 그 CF의 진가가 나타났던 것이지요.

  박동진 선생이 대한민국 국악에 남기신 업적이야 일일이 다 설명할 필요가 없을듯 합니다. 이분의 생애를 조명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그리고 오늘날 너무나 현대적인 것에 몰두하는 우리들에게 진정 “우리 것은 소중한 것”임을 몸과 마음과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그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현재 공주에는 박동진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저는 도민리포터로써 이번 7월초에 이곳 공주시 무릉동에 자리잡고 있는 박동진 기념관에 들렀는데 기념관에서는 마침 18일부터는 공주문예회관과 공주대학교 백제교육문화관에서 전국 명고 명창대회가 있다고 알려주면서 팜플렛을 주시더군요.

 대회 기간중 꼭 참석해서 현장을 취재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못해 기념관에 들른 당일날 선생의 발자취와 업적을 뵙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우리 전통음악의 소중함을 이어가기 위해 선생의 이름을 딴 박동진 판소리 명창 명고대회는 올해로 벌써 14회째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바로 엊그제 20일에 이 대회의 최종 심사 결과가 발표 되었고 저도 공주시청에서 배부한 수상자 사진과 자료를 구했습니다.

명창부 대상을 받은 현미씨(사진은 공주시청에서 배부해 주신 것입니다)

▲ 명창부 대상을 받은 현미씨(사진은 공주시청에서 배부해 주신 것입니다)
 

현미씨의 열창 모습(사진은 공주시청에서 배부해 주신 것입니다)

▲ 현미씨의 열창 모습(사진은 공주시청에서 배부해 주신 것입니다)
 

고법 부문 대상을 받는 고정훈씨(사진은 공주시청에서 배부해 주신 것입니다)

▲ 고법 부문 대상을 받는 고정훈씨(사진은 공주시청에서 배부해 주신 것입니다)
 

고정훈씨의 연주모습(사진은 공주시청에서 배부해 주신 것입니다)

▲ 고정훈씨의 연주모습(사진은 공주시청에서 배부해 주신 것입니다)


 이번 대회의 최종 수상자 결과를 보면 대상은 명창부문의 현미씨(서울시 종로구)가 받아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았고, 고법부문은 고정훈씨(경기도 광명시)가 차지해서 국무총리상을 받으셨습니다.

심사 결과를 간략히 말씀드립니다.
판소리 일반부 장원 = 대전 동구 이진우씨(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고등부 장원 =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양혜원 학생(교육부장관상)
고수부문 일반부 장원 = 전성환씨(충청남도지사상)
신인부 장원 1 = 배순금씨(KBS대전방송총국장상)
신인부 장원 2 = 박진씨(공주시장상)
학생부 장원 =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 최성민 학생(교육부장관상
이상 입상자 명단과 수상 내역입니다.

 박동진 판소리 명창, 명고대회는 이미 14회째나 차른 전통과 품격 있는 대회입니다. 판소리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름은 물론 판소리 일곱 바탕을 소리로 복원한 박동진 선생의 예술혼을 잇기 위해 만든 상입니다.

 박동진 선생의 본향인 공주에서 열리는 국내 최고의 권위 있는 대회이니 우리가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이상할게 없습니다.

 선생의 기념관을 좀 둘러 보겠습니다.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

▲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


 이곳에 가면 기념관과 판소리 전수관이 있습니다.
 기념관에는 당신의 출생과 업적, 그리고 대한민국 국악에 남기신 발자취를 각종 자료와 모형으로 생생하게 표현해 놓았습니다.

 흥보가, 적벽가, 춘향가. 수궁가, 심청가를 누구나 앉아서 감상할 수 있도록 버튼만 하나 눌러도 될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린 시절, 마당에서 소리 연습을 하던 소년 박동진.

▲ 어린 시절, 마당에서 소리 연습을 하던 소년 박동진.
 

버튼만 눌러도 판소리를 들을수 있게 한 시설

▲ 버튼만 눌러도 판소리를 들을수 있게 한 시설
 

유관순전 등 많은 작품을 직접 쓴 친필 유물

▲ 유관순전 등 많은 작품을 직접 쓴 친필본
 

생전에 받은 훈장

▲ 생전에 받은 훈장
 

생전에 받은 수많은 대회 수상 경력과 상장, 감사패 등.

▲ 생전에 받은 수많은 대회 수상 경력과 상장, 감사패 등.


 당신이 직접 작곡한 유관순전, 이순신전, 장화홍련전 등 많은 작품의 친필본이 함께 전시되어 있고 생애동안 받은 훈장, 상장과 상패, 한복 두루마기 등도 볼수 있습니다.
 전수관에도 학생 등에게 판소리를 가르칠수 있는 북과 음향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자료 전시

▲작품별 자료 전시
 

열차아시는 모습

▲ 생전에 열창하시는 모습. 연세가 드시면서 몸이 쇠잔해져 가자 "소리를 알게 되니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며 안타까움을 표하셨다 합니다.
 

소리만으로 평생을 바치신 분. 지금 무슨 생각들 하고계시는걸까요...

▲ 소리만으로 평생을 바치신 분. 지금 무슨 생각들 하고계시는걸까요...


 선생께서는 지난 1916년 7월 12일 공주시 무릉동 365번지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대전중학교를 다니다가 소리를 하기 위해 18세에 김창진 문하로 들어가 사사했고, 이후 정정열 문하에서 판소리 춘향가를 , 유성준 문하에서 판소리 수궁가를, 조학진 문하에서 적벽가를, 박지홍 문하에서 흥보가를 사사 했다고 합니다.

 1973년에는 선생이 어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고수만 5명이 교체되는 충무공 이순신전을 10시간의 공연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완창을 하자 방송을 듣던 박정희 대통령이 방송국을 찾아와 박동진 명창을 격려 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판소리!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우리다운 것이고, 우리 백의민족의 가슴에 피끓는 민족혼을 일깨워 주는 소중한 소리입니다.

 선생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한국적인 것을 남기시고 2003년 7월8일(향년 88세)에 영면의 길로 떠나셨습니다.
 
박동진 선생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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