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4시경에 적막한 시골집에 휘잉하는 심상잖은 바람소리와 함게 엄습하는 공포가 있었다. 드디어 볼라벤이 한반도를 기습하는 조짐이다. 잠에서 깨어나 문밖을 살피는데, 여전히 풀벌레들이 풀섶에서 노래를 하며 태풍이 오는 소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하다.
시계는 새벽5시를 향하고 폭풍을 몰고 오는 바람소리는 점점더 강도있게 다가오며 여기저기 나무와 키큰 식물들이 바람에 너울너울 춤을추며 마치 유령들이 술렁이는것 같다.
이걸 어쩌나, 드디어 올것이 왔다는 예감과 함께 거세지는 바람을 피해 창문을 잠근다. 창문을 통해 산을 바라보니 큰나무들이 바람따라 이리저리 출렁거리며 힘겹게 지탱하고 있다.
2012년 8월28일 태풍 볼라벤이 오는날은 마치 하늘이 이글거리는 용광로처럼 끓고 있었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먹구름과 함게 바람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날려 버릴 기세다. 문밖을 나가는것 조차도 힘들 정도다. 뉴스로 인명피해를 들으며 태풍이 무사히 지나기를 기다리는 하루는 마치 전쟁터에 서 있는 기분이다.
창을 통해 내다본 지척에서 무언가 불이 번쩍한다. 깜짝놀라 바라보니 지붕위의 양철이 태풍에 날아가서 전선줄에 걸친다. 그리고 전기 스파크가 일어나며 갑자기 정전이 된다.
전기단절로 컴퓨터도 꺼지고 핸드폰밧데리도 충전할 수가 없다. 통신단절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무엇보다 현대인은 통신에 의존을 많이 함을 깨닫게 된다.
수십년된 은행나무도 거센바람에 저항하며 이리저리 흔들리고 설익은 은행 알들을 땅으로 마구 쏟아낸다. 드디어 나무가 힘겨운지 가지 하나를 툭 떨어 뜨린다.
힘들면 아픔을 치르더라도 버리라 했던가. 자연의 경이로운 장면앞에 할말을 잃었다. 거대한 태풍 볼라벤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2시간만에 전기가 회복되고 여기저기서 뉴스 속보가 날아든다. 어느 할머니는 옥상에 올라 갔다가 바람에 날려 아래로 추락하고 어떤 사람은 컨테이너가 바람에 날라와서 밑에 깔려 죽고 어느 노인은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깔려 죽었다고 한다. 학교 등교를 안하고 집에 있는 아이는 이웃동네 친구집 지붕이 날아 다닌다고 한다.
저멀리 내다본 풍경속에는 하우스들이 태풍에 찢겨 바람에 펄럭이며 날리고 있다. 지금 과수원의 사과와 배들이 일제히 우수수 떨어지고 있단다. 이대로 가다간 하나도 안남기고 태풍이 다 쓰러뜨리고 지나가나 보다.
바람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힘겹게 지탱하던 큰 나무들도 하나둘 가지를 부러뜨리며 생존하고 있다. 그렇다. 인간의 삶에도 마찬가지다. 무겁다고 느낄때는 아픔을 치르더라도 포기할 것은 버려라. 군더더기 많이 안고 가는 삶은 거센바람이 왔을때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진리를 이번 태풍으로 깨닫는다.
인간의 문명이 지금 어디까지 왔으며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본다. 고도로 발전된 문명 속에서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는 무력감에서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며 이번 자연 재해로 상처입은 농업인들의 마음치유가 하루속히 이루어지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농촌사랑 실천에 동참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