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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금산 재래시장으로 오세요

사람 사는 향기, 웃음이 넘치는 살가움, 덤으로 주는 인정이 넘쳐요

2012.05.01(화) 14:21:44 | 금산댁 (이메일주소:dksjks22@hanmail.net
               	dksjks22@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금산도 요즘 부쩍 시장 한켠에 묵은 먼지를 털고 지은 깔끔한 상점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도우미가 춤을 추고, 커다란 공기주머니 홍보 인형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어댄다. 재래시장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

이런 상점이나 상가, 좀 커다란 마트가 들어서면 재래시장은 동굴처럼 어둠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지나는 길에 재래시장에 들려 보면 여전히 꿋꿋이 시장을 지키는 노인들과  그래도 그곳서 잔뼈가 굵은 상인들이 묵묵히 남아서 장사를 한다. 

어릴적 우리집은 미나리를 키워서 팔았다.  우리는 미나리꽝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밤이 깜깜해져서야 미나리를 베어서 집에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저녁도 제대로 잡수시지도 못하고는 전등불 밑에서 미나리를 다듬고 묶으셨다. 밤을 새다시피 하시고는 새벽같이 첫차를 타고 장에 가서 미나리를 좁디좁은 골목에 펼쳐놓으셨다.
 

 

나는 어머니랑 같은 버스를 타는 것을 싫어했다. 어머니의 커다란 미나리 짐보따리에서는 물이 흐르고 버스기사 아저씨는 어찌나 뭐라고 하시는지. 창피해서가 아니라 그 기사에게 농촌에서 그럴수도 있는거 아니냐고 항의하고 싶어도 힘이 없는 내가 미워서 어머니랑 같이 버스 타는 것이 싫었다. 일부러 걸어서 학교를 가기도 했었는데...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젠  비싸지 않게 이것저것 푸짐하게 살 수 있는 재래시장을 난 좋아한다. 그래서 인근에 큰 마트보다는 재래시장을 즐겨 찾는 것이다.

또 미나리 짐봇따리를 머리에 이고 딸년 학비 보태주기 위해 시장 바닥을 헤맨 어머니가 생각나 재래시장에 애착이 더 간다.

내가 그토록 싫어 했던 재래시장의 단골 손님이 되었으니 격세지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장에 나온 김에 고구마도 사고 도토리묵 한덩이, 두부 두모, 고기와 떡도 좀 샀다. 옆에 온 다른 아줌마는 연신 “어머, 마트보다 싸네”라며 놀라움 반, 기쁨 반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트에서 깔끔한 비닐 포장으로 싸서 1300원 표딱지가 딱 붙은 잘 생긴 호박만 집어들다가 약간 상채기 났지만 투박하면서 맛나게 생긴 재래시장의 700원짜리 애호박을 집어들던 그 아낙은 재래시장에 오길 잘했다고 웃음지어 보였다.

그랬다. 재래시장에는 여전히 우리 서민들의 삶의 향기가 있고, 인생이 있고, 추억이 있고, 어머니가 있고, 고향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향수에 젖으며 시장을 돌았는데 다른 아낙들도 싸게 좋은 물건 샀다고 연신 히죽히죽이다. 돈이 많이 굳었다나?

재래시장은 입구란 게 딱 정해져 있지 않다. 어느 길로 가도 다 통할 수 있다. 가다 보면 짐 실은 리어카가 좁은 길목을 파고들고 아이들도 잠시 엄마들의 손을 놓은 채 길을 비켜 주곤 한다. 상인들의 외치는 소리, 아이들의 사달라는 소리, 우연히 만난 아줌마들의 반가워하는 소리, 더러는 깎아달라며 흥정하는 소리들이 구수하게 엉킨다. 
 
목청껏 외치고 함박웃음이 터지는 재래시장은 축제처럼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많다. 아이들도 시장 구경을 좋아하고, 길가에 즐비한 간식거리에 환호성을 올린다. 천 한 가닥에 몸을 가리고 옷을 입어보느라 박장대소하는 연세 지긋한 분도 있다. 그것이 내 어머니 모습 같아서 물건을 사다말고 저절로 미소 지으며 흐뭇해진다.
 
재래시장에서는 인정어린 사람들의 향기가 난다. 꼭꼭 숨겨 둔 마음을 햇빛에 내 말리듯 환해지는 가하면 소란스럽게 피어오른 인심을 맛보는 일이 되어 즐거워진다.
 
하지만 점차 재래시장 한켠에 자리잡는 대형 수퍼들이 늘어나고 있다. 천정엔 오색 리본이 나풀거리고, 매장 사이로 세련된 멘트가 울려 퍼지는 분위기 속에서 주부들이 장을 보게 되었다. 예전과 사뭇 다른 정경이다.
 

몇일전 나도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는 심산으로 그 대형 마트에 들어섰더니 밝고 화려한 매장사이로 빠른 템포의 음악이 어우러져 무언가를 사야할 것만 같은 심정이 꿈틀거렸다. 

눈부신 조명 아래 환영처럼 어릴 적 생선장사 할머니가 문득 떠올랐다. 환갑이 훨씬 넘었음직한 할머니가 수줍게 미소 지으며 “여기 생선이 좋당께. 단골들은 그 맛을 다 알어.” 하며 웃으시던 모습. 할머니는 그 옛날 막내 동생을 포대기에 업고 장을 보러 갔던 어머니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그 꼬마를 기억할까.

그 할머니가 아직도 정겹게 기억 나는걸 보니 나는 진짜 재래시장 체질인가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나는 장바구니를 들고 장터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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