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황산벌의 거룩한 별…계백장군

2011.11.01(화) | 김진환 (이메일주소:wlsghks7001@hanmail.net
               	wlsghks7001@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계백(階伯)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이 드라마가 계백장군의 충정과 의리를 넘어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다리가 되었으면 한다. 시각을 달리보면 남북통일보다 남남통일이 먼저이고 남남통일보다 우리 역사속에 있는 삼국 중 백제의 한을 먼저 달래는 일이 우선되어야 되지싶다.

백제의 한을 풀지 않는 것은 우리가 진실로 하나됨을 포기하는 일과도 비슷하다.  망해가는 나라 백제, 그 안에 있던 백성들의 혼을 달래는 일,,, 나는 지금 신라인이지만 지금이라도 당나라에 빌붙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만 이 파렴치를 백제의 하늘에서 진실로 신라인을 대표하여 사죄하고픈 심정이다.

황산벌은 지금 논산쪽이다. 백제의 멸망은 고구려 멸망을 이었다. 그렇게 동족을 무너뜨린 신라는 겨우 대동강 이남에 군사를 배치하는 누를 범하고 만다. 백제를 밟고 고구려를 통채로 내어준 신라의 죄는 천년을 넘어 지금도 물어야 할 일이다.

사람으로써 사람도리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전쟁을 앞두고 처자를 몰살한 일은 계백장군만이 가진 가슴 아픈 결단이었다. 치욕을 당하고 살아 있는 몸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고, 몸은 죽었으나 그 의기가 살아 있으면 그것으로 살아 있음이다. 이것이 바로 백제의 혼이고 계백의 정신이다.

계백장군은 천년 뒤를 내다본 것이다. 질 줄 아는 싸움에서 이렇게 나서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 하나되지 못하고 국론이 분열되면 터무니 없는 군사로 적을 맞아야 하며, 나처럼 어이없는 선택을 하여야 하며, 나라없는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가르쳤던 것이었다. 장군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백제의 국운이 바람 앞의 등불일 때 좌평 성충(成忠)은 반드시 전쟁이 일어나리라 예상했고, 육로로 오면 탄현(炭峴)을 넘지 못하게, 수군이면 기벌포(伎伐浦)를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유언처럼 의자왕에게 간언하였다. 의자왕은 이를 듣지 않고 비웃었다. 사태가 심각해진 다음에도 신하들 사이에서는 지공과 속공의 지리멸렬한 말싸움만 계속되었다. 마지막으로 판단하자고 유배 간 좌평 흥수(興首)에게 사람을 보내지만 그에게서는 성충의 말과 같다는 짤막한 답변만이 돌아왔다. 그마저도 듣지 않은 것이 의자왕이었다.

누란의 위기에 놓였음에도 즉위때부터 충언과 간언을 해주며 의자왕을 지켰던 두 충신의 말이 더 이상 의자의 귀로 들어오지 않았고 오로지 권력만을 쥐겠다는 간신들의 소리만 왕의 귀에 크게 들였다.

당나라와 신라의 군사가 백강과 탄현을 지났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의자왕은 계백을 불렀다. 이때 그의 계급이 달솔이었다. 16관등 가운데 두 번째인 꽤나 높은 자리였지만 그의 가용병력은 5천 명에 지나지 않았다. 말이 좋아 결사대이지, 나,당 연합군에는 어림도 없는 숫자였다.

장군의 비장한 결의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한 나라의 힘으로 당과 신라의 대군을 당하자니, 나라의 존망을 알 수 없도다. 나의 처자가 붙잡혀 노비가 될지도 모르니, 살아서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깨끗이 죽는 편이 낫겠다.”

황산벌 초기전투에서 어린 화랑을 붙잡은 장군이 말한다.
“신라를 적대할 수 없겠구나. 소년조차 이러하거늘 하물며 장사들이야 어떠하겠는가.”
관창이 단신으로 쳐들어와 붙잡혔을 때 그의 투구를 벗겨보며 한 말이다.

강기슭을 가로막은 철옹성만 보았기에 惟看鐵甕橫江岸
구름처럼 전함이 바다 물결 건너올 줄 몰랐지 不信雲帆度海波
술잔 잡아 계백에게 제사를 올리고 싶은데 欲把殘杯酹階伯
안개 낀 낡은 사당 덩굴풀이 우거졌네 荒祠煙雨暗藤蘿

정약용이 쓴 ‘부여 회고(扶餘懷古)’라는 제목의 시이다. 무엇으로 장군을 위로하겠냐마는 정약용선생은 장군의 마음을 그리 잘 아셨나보다.

지금 충남 논산시 부적면 수락산 언덕에는 장군의 묘가 있다.. 계백장군의 목이 잘렸다고 전하는 수락산(首落山)과 시신을 급히 가매장하였다는 가장곡(假葬谷)이 이곳으로 전해진다. 계백의 위패를 모신 충곡서원(忠谷書院)이 바로 뒤편에 있다. 다산이 노래한 낡은 사당이 그것이다.

장군의 혼은 백제의 혼만을 뜻하는게 아니다. 군인이자,공무원이며, 어른으로써 나라위한 처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우리에게 온 몸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 분의 혼을 온전히 달래는 일, 그것은 전라와 경상을 하나되게 하는 일이다 조만간 충곡서원에서 술을 한 잔 따라 올려야 겠다.


 

김진환님의 다른 기사 보기

[김진환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