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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계룡산 갑사, 눈 덮힌 봄 산사를 가다

때 늦은 폭설로 하얗게 옷을 입은 계룡산국립공원의 정취

2010.03.12(금) | 계룡도령춘월 (이메일주소:mhdc@tistory.com
               	mhdc@tistory.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계룡산국립공원.  지리산에 이어 1968. 12. 31에 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총면적 60.98 km2로 공주시에 41.15 km2, 논산시에 13.01 km2, 대전광역시에 6.82 km2가 각각 걸쳐 있는 곳이다.

그 중에서 계룡산 국립공원의 3대 명찰 중 으뜸인 갑사가 있는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주소를 두고 있다. 

3월10일. 때늦은 폭설로 온 천지가 하얗게 변한 가운데 갑사를 찾았다. 

  계룡산갑사눈덮힌봄산사를가다 1  
 

사천왕문 쪽으로 가는 길 가운데 우뚝선 이번에 새로이 설치 한 전봇대. 그나마 계룡산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마저도 완전히 가려 버렸다. ㅠ.ㅠ

갑사는 통일신라시대에는 오악[五嶽] 중 서악[西嶽]으로, 고려시대에는 상악 묘향산[上嶽 妙香山], 하악 지리산[下嶽 智異山]과 더불어 삼악 중 중악[三嶽 中 中嶽]으로 일컬어지는 명산 계룡산[名山 鷄龍山]의 서편 기슭인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위치한 가람으로 백제 구이신왕 1년(420년)에 아도화상이 지었다는 설과 556년에 혜명이 지었다는 설 등이 있는데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갑사는,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阿道和尙]이 계룡산을 지나가던 중 산중에서 상서로운 빛이 하늘까지 뻗쳐오르는 것을 보고 찿아가 보니 그곳이 현재의 천진보탑이었다.

420년(백제 구이신왕 원년) 천진보탑아래에 갑사를 창건하였다고 하는 설이 유력하다. 또한, 556년(위덕왕 3년) 혜명대사가 천불전[天佛殿]과 진광명전 대광명전[眞光明殿 大光明殿]을 중건하고,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천여칸의 당우를 중수하여 화엄대학지소를 창건함으로 해서 화엄도량의 법맥으로 전국의 화엄10대 사찰의 하나가 되어 국중대찰[國中大刹]로 크게 번창하였다고 한다.

887년(진흥왕 원년) 무염대사가 중창한 것이 고려시대까지 이어졌으며, 임진왜란 와중에도 융성하였으나 1597년 정유재란(선조 30년)에 이르러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었다.

이를 1604년(선조 37년) 사승[寺僧] 인호 경순 성안 보윤 등이 대웅전과 진해당을 중건하였고,  1654년(효종5년)에는 사승[寺僧] 사정 신징 경환 일행 정화 균행 등이 중수하였다. 이 후에도 부분적인 개축과 중수를 거쳐 1875년(고종12년)에 대웅전과 진해당이 중수되고 1899년 적묵당이 신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계룡산갑사눈덮힌봄산사를가다 2  
 

그리고 갑사에는 보물제478호로 지정된 갑사동종을 비롯한 많은 문화 유산들이 있다. 특히 보물제582호인 월인석보 판목은 『월인석보』를 새겨 책으로 찍어내던 판각으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유일한 것이다.

『월인석보』는『월인천강지곡』과『석보상절』을 합하여 세조 5년(1459)에 편찬한 석보는 석가모니불의 연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다.

『석보상절』은 조선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대군(세조)이 불교서적을 참고하여 지은 것으로 『월인천강지곡』은 세종 29년(1447)에 세종이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은 것이다.

『월인석보』는 본래 57매 233장으로 모두 24권이었으나 현재는 21권 46매만 남아있다. 이 판목은 선조 2년(1569) 충청도 한산에 사는 백개만(白介萬)의 시주로 활자를 새겨 충남 논산 불명산 쌍계사에 보관하였다가, 70여년 전부터 갑사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계수나무에 돋을새김으로 새겼고, 판목의 오른쪽 아래에 시주자의 이름과 새긴 이의 이름이 있다고 한다. 내용표기에 있어서는 방점과 글자획이 닳아 없어져 변모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계룡산갑사눈덮힌봄산사를가다 3  
 

갑사는 가까이 있어 너무 자주 다녀서 인지 차라리 처음 오는 사람들 보다 나에게 관련 자료나 사진들이 더 부족한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대다수의 자료들이 계룡산 안내 홈페이지에 실려 있었는데, 도메인을 잃어 버린 후 관리를 하지않아 다 사라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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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을 등지고 선 대웅전의 모습

갑사는 원래 대웅전과 갑사강당이 너무 가까이 붙어 지어져서 야단법석 등 야외 법회를 하기에는 절 마당이 너무 협소했으나 몇년전 갑사 강당을 바깥으로 옮기면서 제법 절마당이 넓어져 왠만한 행사는 다 치를 수 있게 되었다.

갑사의 대웅전은 지방유형제10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갑사 대웅전은 절의 중심에 있는 법당으로 원래는 현재 대적전이 있는 근처에 있던 것으로 보이며, 다시 지을 때 이곳에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1층이며, 옆면이 사람인(人)자 모양으로 가장 단순한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가운데 3칸은 기둥 간격을 양 끝칸 보다 넓게 잡아 가운데는 공포를 2개씩, 끝칸에는 1개씩 배치하였다.

내부는 우물천장으로 되어있고, 불단을 만들어 석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그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설치하여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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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제478호로 지정된 갑사동종이 있는 종각

원래의 종각은 종무소 곁에 있었으나 절마당을 넓히고 강당을 옮기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몇년전 갑사동종을 봉인 하기 전 12월 31일 해맞이 법회 전 야단법석을 하면서 마지막 타종을 한 적이 있는데 필자가 그 마지막 타종의 마지막을 장식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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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루를 지나 전통찻집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나 지금은 전통차와 다기를 파는 곳인데 무슨 일인지 문이 굳게 잠겨져 있다.

오는 봄을 시샘하듯 내려 덮은 진눈깨비 덕분에 설화가 가득한 배롱나무의 꿈틀거리는 듯한 가지가 마치 하늘로 오르려는 용들의 움직임 같다. 

계룡산갑사눈덮힌봄산사를가다 7

날씨는 봄을 시샘하여 폭설의 진눈깨비를 내렸으나 어머니인 대지는 이미 봄을 맞이하고 계룡산의 깊은 산속에서 따듯한 가슴을 내어 놓고 있다. 쉼없이 흐르는 계곡물은 어머니의 모유처럼 따스해진 대지를 적시면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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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삼불봉으로 오르는 길

이 눈속에 부지런한 이들은 이미 계룡산의 설경을 마음에 담고 하산을 하고 있다. 겨울 산의 정취는 뭐니 뭐니해도 설산의 풍광이 진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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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통의 전화로 공연히 마음이 바빠진 나는 서둘러 갑사를 빠져 나왔다. 대지에 쌓인 눈은 온기로 이미 녹아 내렸지만, 나무에 맺힌 설화는 가지를 희롱하며 발고 맑은 빛을 발한다.

무소유의 삶과 맑고 철정한 구도인의 자세를 잃지 않았던 법정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이글을 쓰고 있다.

...()... 스님 성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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