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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남쪽의 금강산'에 우뚝선 태고사

2009.09.22(화) | 잎싹 (이메일주소:kji206@naver.com
               	kji206@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대둔산 능선을 주행하다 보면 마천대 정상에서 낙조대를 향하는 주능선에 태고사에서 올라오는 산길 이정표를 보면서 언제 태고사에서 출발하는 등반을 해보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책속에서 태고사에서 수학한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 새겨진 석문을 사진으로 보며 그 모습이 궁금해졌다.

충남 금산군 진산읍 향정리에 있는 태고사는 대둔산에 소재하는 사찰이다.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대둔산(878m) 낙조대 북동쪽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태고사는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12승지 중 하나로 꼽히는 태고사는 신라 신문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운효대사가 이곳 태고사 절터를 발견하고 너무 기뻐 3일 밤낮에 걸쳐 춤을 추었다는 설화가 있을 만큼 절경이다.  하지만 6.25 전쟁으로 불에 타 아무것도 없었는데 도천스님이 50년간 두문불출하며 지금까지 불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남쪽의금강산에우뚝선태고사 1  
▲ 태고사 높이 자리잡은 범종각

네비게이션으로 태고사를 치고 달려가니 저수지를 지나서 태고사 주차장이 나왔다.이곳에 주차하고 올라가야하나 망설이다가 주변 상인에게 물으니 절까지 차가 올라 갈 수있다는 말씀에 좁은 산길을 차로 올라갔다.

사실 평소 같으면 2km정도의 산길은 쉽게 걸어 다니는 코스이지만, 휴일 오후에 나섰기에 빠듯한 시간으로 인해 산길에 차 매연 남기는게 꺼림찍했지만 마음이 바빠 할수 없었다.

  남쪽의금강산에우뚝선태고사 2  

약 1km정도 올라가다가 조금 가파른 느낌이 상당하여 주변 이면도로에 주차하고 걸어가기로 했다. 급한 경사길옆으로 궝의 다리꽃과 물봉선이 철지난 모습으로 살포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주차하고 걸어가길 잘했다는 판단이 들 정도로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그래도 절 앞까지 차는 올라갈 수 있고, 운전기술과 강심장을 요할듯 두려운 각도의 길이다. 불경소리가 들려 절이 곧 나타 날듯 했으나 숲속을 파고드는 불경소리는 녹음된 테이프소리였다. 땀이 등줄에 송글송글 맺힐때 쯤 공사중이라 옛길 석문쪽으로 안내하는 글귀가 보였다.

아직도 한참 불사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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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문

오히려 더 잘된 듯, 태고사의 일주문 격인 자연기암으로 안내하는 글귀를 보며 계단길을 올랐다. 기암 좌측에 크게 적힌 우암 송시열 친필 석문 은 빨강색으로 힘차게 음각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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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암 송시열 친필 석문

석문 바위틈으로 한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었다. 마치 세속의 묵은 마음을 다 비우고 들어서라는 뜻 인듯 해서 묵은 근심을 떨쳐내고 경건한 마음으로 석문을 들어섰다.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진다하니, 고3수험생 학부모로써 대박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지나온다. 느긋하게 가파른 돌계단은 쇠락한 느낌은 들지만 적당한 습기와 더불어 운치가 흘러 옛스럽다. 

  남쪽의금강산에우뚝선태고사 5  

단지, 안전을 위해 계단 길 양 옆으로 밧줄을 따라 꽂아둔 철근이 눈에 거슬렸다. 그런 마음도 잠시 제일 먼저 깊고 높은 2층 해우소가 우측으로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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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우소와 범종각

그리고 갑자기 대리석으로 펼쳐진 모습은 평소 생각한 고즈늑한 사찰의 느낌이 아니라 조금 놀라웠다. 계단 길을 조심스레 오르며 살펴보니 가파른 곳에서 오밀조밀 요사채 느낌으로 방들이 즐비하였다. 가파른 조건에 공간 활용을 최대한 살린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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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에서 보면 요새같은 요사채들

108계단을 올라 전각을 둘러보니 병풍처럼 산세가 기암들이 도열하여 감싸안고 있는듯 하였다. 산사는 옛 정취는 찾아볼 수 없지만 정갈함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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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고사 현판

제일 먼저 들어오는 대웅전에는 이색적으로 “태고사”라고 편액이 적혀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지만 큰 스님께서 작은 사찰에 대웅전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현판를 내리게 하였다고 한다.  그 옆으로 대웅보전과 관음전, 지장전이 좌우로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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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고사 전체 전경과 휠체어산책하시는 도천큰스님

요사채 부근으로 헬체어를 탄 노승이 계서 두 손 모아 합장하여 인사를 드렸더니 반바지를 입고 오면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아뿔싸~ 그냥 산에 간다는 느낌으로 사찰에 올라왔는데 이제서야 나의 모습이 되돌아봐진다.  죄송하다는 말씀으로 못내 쑥스러워하며 다시 인사를 드렸다. 알고 보니 노승은 백세를 넘긴 도천큰스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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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천큰스님

도천스님은 직접 손으로 불사를 50여 년 동안 만드셨던 분, 스님은 잠시라도 안일과 편안함을 용납하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게 바로 게으름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는것이 스님의 수행법이었던 것이다.  실천으로 법문을 대신하신 도천스님, 그런 분의 첫 말씀이 반바지였으니 죄송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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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마당에서 내려다본 범종각과 해우소

경내는 저녁예불전이라 고요함만이 흐른다. 경내에서 바라본 풍광은 과히 탄성을 자아낸다.  적막강산 깊은 구름 속에 갇히는 곳이라 할까.

암릉을 기반으로 웅장하게 서있는 범종각과 어우러진 풍경은 아찔할 정도의 높이에 자리 잡아 눈 아래 펼쳐진 산하의 모습을 다 품고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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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트인 시야는 한폭의 수묵화이다

탁 트인 전망은 안개를 무한대로 품을 수 있고 눈이라도 내린다면 그 절경은 말로 표현 못할정도로 아름다울것 같다. 긴 시간을 그 풍경에 취해 발걸음을 옮길수가 없다.

사찰의 풍경만큼은 천년고찰의 느낌을 그대로 안고 있는듯 하다.

 

  남쪽의금강산에우뚝선태고사 13  

단지 범종각에서 화장실까지 음식쓰레기를 내려 보내는 모습은 그 풍경을 반감시키는듯하다.

숲은 금방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길은 흐른다는 말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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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르게 내리막길 끝은 아득한 미로 속으로 이어지는 듯 걸음이 빨라졌다. 길가에 핀 들꽃들은 계속 발목을 잡아 어둠이 성큼 다가오는 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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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며느리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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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꿩의 다리
수백 년 전 진묵대사가 “하늘을 이불삼고 땅을 자리하여 산을 베게삼고 누워있으니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강물은 술동이로다” 라고 했으며 만해 한용운은“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명승지를 말하지말라” 라고 했을 정도로 그 풍광이 아름다워 눈길을 사로 잡는 태고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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