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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백제 숨결을 찾아 공산성에 가다

충남 공주시 금성동 65-3

2024.04.13(토) 16:04:17 | 영이 (이메일주소:kiiro02@naver.com
               	kiiro0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산책을 좋아하는 영이는 오늘도 산책하기도 좋고 틈틈이 우리 역사도 엿볼 수 있는 곳 공산성에 가보기로 했다. 공산성은 모두 돌아보려면 꽤 시간이 많이 걸려서 2~3번에 걸쳐서 산책하길 권한다. 아이들 어렸을 때 공산성을 한번에 다 둘러보려고 했다가 지친 기억이 있다. 

공산성은 웅진기 백제의 왕성이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이다. 1970년대 말부터 진행된 백제문화권 개발 사업을 계기로 공산성이 관심을 받게 되었다. 당시 정밀 조사를 통해 성벽의 둘레와 성내 시설물의 현황이 확인되었고, 특히 백제 때에는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 시대에 석성으로 개축하여 현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웅진기에는 왕성이었고, 사비기에는 북방성, 통일신라때는 웅천주의 치소성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충청 감영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질 때 감영이 성내에 있었고,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주차장
▲ 주차장

공산성 쪽으로 소형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도 넉넉해서 비교적 쉽게 주차할 수 있었다. 소형 주차장이 만차라면 근처에 임시 주차장도 있고, 금강 변 다리 아래 주차장이 있으니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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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 

금서루 입구 비석군이다. 공주와 관련된 인물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들이다.
공주시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송덕비와 제민천교 영세비 등 47기가 있다.
대다수는 인물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새겼고, 우의정, 도순찰사, 관찰사, 암행어사, 목사, 판관, 군수, 우영장, 중군 등 주로 충청감영과 공주목 관아에 배치되었던 관리의 송덕비가 많다.
들어가는 입구에 비석군이 즐비해 있으니 뭔가 숙연해 지는 기분이다. 비석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다.

공산성 안내 책자에 산책 코스가 3개 나와 있었다. 
영이는 이번에는 비교적 간단한 2번 코스를 선택했다. 30분 소요로 되어 있다.
금서루 → 쌍수정 → 왕궁지 → 영은사 → 공북루 → 금서루
오늘은 산책 코스대로 돌아보기로 했다. 

금서루
▲ 금서루

비석군들 위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금서루이다. 금서루는 공산성 4개 성문 가운데 서쪽 문루이다.
성 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지만 1993년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현재의 문루는 본래 서문이 있던 자리에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해 지은 것이다. 금서루는 비록 새롭게 복원된 것이지만 조선 시대 성문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쌍수정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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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수정 가는 길

쌍수정 가는 길이다. 커다란 마른 나무들 사이로 연초록 잎파리들이 새로 나와서 풍경이 싱그럽다.
쌍수정에 거의 다 와서는 고목 사이로 핀 벚꽃 나무들의 꽃들이 그림 같다. 
길 옆 쪽은 접근 금지다. 보존, 정비를 위한 학술발굴조사 현장이라고 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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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수정

드디어 쌍수정에 도착했다. 
주위의 커다란 나무들이 멋스럽다. 

쌍수정은 충청도 관찰사 이수항이 1734년에 인조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조선의 16대 왕인 인조는 1624년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에서 6일 간 머물렀는데 당시 인조는 두 그루의 나무 아래에서 난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인조는 난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자신이 기대었던 두 그루의 나무, 즉 쌍수(雙樹)에 정3품의 벼슬을 내렸다. 그 후로 공산성을 쌍수산성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수항이 관찰사로 부임하여 나무가 있던 자리에 삼가정을 세웠는데 이 건 물이 쌍수정이다. 오늘날의 쌍수정은 1970년에 해체한 후 다시 세운 것으로 조선 시대의 쌍수정과 다소 차이가 있다.  

쌍수정의 이야기를 접하고 보니 시대는 변했어도 우리 인간들이 자연에게 위로를 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자연에게 위로를 받는 대신 우리도 자연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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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지
▲ 왕궁지

쌍수정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 왕궁지 터가 있다.
그런데 이곳은 공사 중이다.
백제 왕궁지는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으로 옮긴 475년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왕궁 터이다. 
공사중인 추정 왕궁지 터를 둘러싸고 벚꽃이 활짝 피어서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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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루
▲ 진남루

왕궁터를 지나서 조금 걷자 진남루가 나왔다. 

공산성 진남루는 공산성의 남문이자 정문이며 조선 시대에는 삼남(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관문이었다. 공산성은 사방에서 문 터가 확인되는데, 그중에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는 성문이 남아 있었지만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 있었다. 이에 1993년 동문 터에는 영동루를, 서문 터에는 금서루를 다시 세웠다. 진남루는 여러 차례 고쳐 지었지만 그 위치와 모습은 본래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있는 성문은 1971년 전부 해체하고 다시 세웠다고 한다.

진남루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니 공주 시가지가 나무들 사이로 보인다.
누각에 올라 의자에 앉아 있으면 나무들 사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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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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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은사

다음 목적지는 영은사다. 진남루에서 표지판을 따라 내려가니 기와 담 사이로 작은 절이 보인다. 
정말 아담한 절이다. 절 마당 한쪽에서 풀을 뽑는 승녀의 모습도 왠지 정겹다.

영은사는 세조 4년(1458)에 지은 사찰로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의 합숙소로 사용하였으며, 광해군 8년(1616)에 승장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관리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영은사 건물 담 벼락에 마음 다스리는 글이 있어 적어본다.


마음 다스리는 글

복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덕은 겸양에서 생기며
지혜는 고요히 생각하는 데서 생기느니라
근심은 애욕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며
허물은 경망에서 생기고 죄는 참지 못하는데서 생기느니라
눈을 조심하여 남의 그릇됨을 보지 말고
맑고 아름다움을 볼 것이며
입을 조심하여 실없는 말을 하지 말고
착한 말 고운 말을 언제나 할 것이며
몸을 조심하여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 하라
어른을 공경하고 덕 있는 이를 받들며
지혜로운 이를 따르고 모든 이를 너그럽게 용서하라
오는 것 거절 말고 가는 것을 잡지 말며
내 몸 대우 없음을 원망하지 마라
남을 해하면 마침내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오고
세력에 의지하면 도리어 재화가 따르느니라.

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찌 저 글귀대로 살 수 있겠는가.
그저 노력하며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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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복루

영은사를 지나 공복루 가는 길이다. 바로 옆에 금강이 훤히 보이는 석벽도 있는데 높이가 꽤 높아서 가까이 가기 무서웠다. 그래도 그 위 석벽에서 보이는 금강 풍경은 정말 끝내준다.

공북루는 공산성의 북쪽 문루로 금강의 남쪽과 북쪽을 오가는 남북 통로의 주 출입문이다. 충청감영을 충주에서 공주로 이전하면서 1603년에 공산성을 크게 고쳐 쌓고, 이때 공북루와 그 옆에 월파당을 함께 지었다. 여러 차례 고쳐 지었으며, 월파당은 1954년에 철거되었다. 
공북루의 아래쪽은 성으로 통하는 통로로, 위쪽은 마루를 만들어 금강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공북루 아래쪽으로 가면 금강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 유일하게 금강으로 통하는 길이 있는 곳이 공북루라고 한다. 공북루에서 바라보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새롭다.

다시 금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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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금서루

공북루에서 금강 반대쪽을 보면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곳곳에 왕궁 부속 건물지 안내 표지판이 있다. 아이들과 같이 둘러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잔디밭을 오른쪽으로 돌아 나오면 처음에 들어왔던 관문인 금서루 돌벼락이 보인다.
반갑다. 금서루~^^ 오늘 산책 마무리 길이다.
30분 정도의 산책 코스지만 영이는 1시간 정도 천천히 산책했다.
성이라 오르막 내리막 길이 있어서, 무리하지 않고 코스를 나누어서 산책하면 좋을 것 같다.

이번 주말에는 백제의 숨결도 느끼고, 산책하면서 힐링도 할 수 있는 공산성 어떤가요?


공산성
충남 공주시 금성동 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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