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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있는 배방산, 그 일 년의 기록

2021.03.01(월) 12:27:04설산(ds3keb@naver.com)

집 가까운 곳에 오를 만한 산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내 젊은 한때, 설악산의 진지함이 좋아 설악산 골짜기와 능선을 무시로 드나들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네 시간을 달려 설악산에 도착하여 보통 열두세 시간이 넘도록 산행을 하고 다시 네 시간을 달려와 새벽에 잠깐 눈을 붙이고 근무지로 향하곤 했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젊음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던가’라는 생각을, 조금씩 늙어가는 요즘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   
 
흐르는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법. 그렇게 함께했던 산 친구들도 나이가 들어 하나둘씩 현역에서 물러나고 큰 산을 오르내리기가 부담스러워진 지금,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는 처지가 되어 '곁에 두고 자주 가 볼 수 있는 산이 제일 좋은 산'이라며 위안을 삼곤 한다. 내가 누구라고 세월이 비껴가겠는가.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가까이 있어 좋은 산, 배방산을 자주 오른다.    
 
봄이 되면 배방산 양지바른 언덕 노란 생강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신호로 겨우내 조금씩 꽃봉오리를 부풀리던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려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그윽한 향기를 선사하고, 이어 노란 산수유가 피고 질 때쯤 진달래와 연분홍 산철쭉이 온 산을 화사하게 장식한다. 산 너머에서 한결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들판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벚나무가 그 하얀 꽃을 피워 봄은 절정에 이른다. 벚꽃이 지고 나면 산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몇 그루 사과나무와 배나무가 꽃을 피워 윙윙거리는 벌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군데군데 숲을 이루던 찔레가 그 하얀 꽃을 피우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아련한 기억으로 ‘너무 슬픈’ 찔레꽃 향기가 이 길 위에 가득했었다.
 
배방산 생강나무꽃
▲배방산 생강나무꽃
 
배방산 진달래
▲배방산 진달래
 
배방산 산철쭉
▲배방산 산철쭉
 
배방산 벚꽃
▲배방산 벚꽃
 
배방산 가는 길가 배꽃
▲배방산 가는 길 배꽃
  
그리고 날이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하면 배롱나무가 수줍은 연분홍 꽃을 피운다. ‘너를 잊지 않으리라’는 꽃말의 보라색 벌개미취와 길가에 그렇게 많던 개망초가 그 하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기 시작할 무렵이면 여느 집 담장 위 능소화와 노랑 코스모스가 꽃을 피우고, 산밤나무의 밤송이가 조금씩 크기를 늘려가는 것이다.
 
배방산 가는 길가 배롱나무꽃
▲배방산 가는 길 배롱나무꽃
 
배방산 길가 벌개미취
▲배방산 가는 길 벌개미취

배방산 가는 길가 개망초
▲배방산 가는 길 개망초
 
배방산 가는 길가 능소화
▲배방산 가는 길 능소화
 
배방산 가는 길가 노랑 코스모스
▲배방산 가는 길 노랑 코스모스

배방산 산밤나무 밤송이
▲배방산 산밤나무 밤송이
 
그러다가 비가 내리는 날이 잦아지면 이 산의 나무들 밑동에는 푸른 이끼가 영역을 넓혀가고 묵은 낙엽 사이로 버섯이 쑥쑥 올라오곤 한다. 비의 계절이 지나고 하늘이 푸르고 높아지기 시작하는 날, 산그림자 위로 살포시 고개를 내밀며 솟아오르는 붉은 해를 보기 위해 새벽산을 오른다. 지난날 수없이 걸었던 산정에서, 또 언젠가 남쪽 섬 제주를 한 바퀴 걷다 맞이하던 그 장엄한 해를 잊지 못한다. 물론 해파랑길 위에서 보았던 동해의 압도적인 일출 역시 여전히 기억하고 있지만, 배방산 산위에서 보는 아침해도 그에 못지않게 황홀하다.
 
장마철 나무에 낀 이끼
▲장마철 나무에 낀 이끼
 
배방산 버섯
▲배방산 버섯
 
배방산 일출
▲배방산 일출
 
배방산 일출
▲배방산 일출
 
다시 산으로 가는 그 길가의 어느 집 울타리에 감이 익어가고, 황금색 들판에 추수가 시작될 무렵 산밤나무 알밤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산에 오르면 산에는 온통 울긋불긋한 가을이 가득했었다. 그러다가 북쪽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화려한 날을 보낸 나뭇잎들이 떨어져 내려 산길에 수북했었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풀숲에 무서리가 내리고 이어 흰눈이 세상을 하얗게 덮으면 배방산도 겨울의 긴 고요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자연의 섭리란 그런 것이다.
 
배방산의 가을
▲배방산의 가을
 
나뭇잎 떨어진 등산로
▲나뭇잎 떨어진 등산로
 
배방산 길가 풀숲에 내린 서리
▲배방산 길가 풀숲에 내린 무서리
 
눈 쌓인 배방산
▲눈 쌓인 배방산
 
이제 다시 남녘의 이른 봄꽃 소식과 함께 춘삼월이 왔다. 머지않아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면 이 산 비탈의 나무들에도 물이 오르고 생강나무가 다시 노란 꽃을 피워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봄이 시작될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품고 자연의 순환이 시작된다.     
 
부디, 올해는 우리를 우울하게 하던 모든 것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쓸려 훌훌 날아가고 좀 더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로 채워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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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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