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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배방산, 그 하얀 산정에 서면

2021.01.03(일) 18:03:43설산(ds3keb@naver.com)

이번 연말과 연초에 눈이 많이 내리고 혹한이 지속될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잘 맞으려는지 지난 연말부터 이 고장에서는 보기 드물게 며칠 연이어 눈이 내린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이면 거친 바람에 눈보라 휘날리던 하얀 능선을 따라 설산을 쏘다니던 내 젊은 날이 생각나 아이젠과 스틱을 챙겨 들고 집 가까운 배방산으로 간다.
  
일부러 먼 길을 돌아 출·퇴근하는 배방산 가는 길은 온통 하얀 눈밭이다. 평소 주변 논밭에는 새들이 날아와 부지런히 먹이활동을 했었는데, 이렇게 하얀 눈이 내려서 쌓이고 얼어붙은 지금 그 많던 새들은 어느 숲속에 웅크리고 눈이 멎고 땅이 녹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눈 내리는 배방산 가는 길
▲눈 내리는 배방산 가는 길

눈 내리는 배방산 가는 길
▲눈 내리는 배방산 가는 길
 
아무도 밟지 않은 쌓인 눈위에 낯선 발자국이 나 있다. 눈 내리는 날이면 신이 나서 뛰어다니던 동네 강아지 발자국일지, 아니면 산에 부족해진 먹이를 찾기 위해 이곳까지 내려온 야생동물의 것일지 모를 발자국이 선명하다.
 
눈 위에 찍힌 동물 발자국
▲눈위에 찍힌 동물 발자국
 
내리던 눈이 잦아들고 눈 쌓인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낙엽이 쌓인 길위에 살짝 눈이 덮여 미끄럽다. 발목을 덮을 정도나 무릎까지 눈이 쌓여 있을 때보다 오히려 이 정도 눈이 쌓여 있을 때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실로 오랜만에 아이젠을 찬다.
 
배방산 오르면서 본 배방 도심
▲배방산 오르면서 본 배방 도심
 
설경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워 ‘눈이 조금 더 내려 주었으면 좋을 텐데’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하늘은 조금 전까지 짙게 뒤덮여 있던 회색 구름이 바람을 따라 물러가고 점점 파란색을 드러낸다. 정상부에 오르는 동안 평소 이 산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배방산 이정표
▲배방산 이정표
 
정상 부근에 다다르자 능선을 넘나들던 심술궂은 바람이 소나무 위에 쌓여 있던 눈을 떨어뜨려 하얀 편린들이 공중에 흩날리며 반짝인다.
 
배방산 정상 부근 소나무 숲
▲배방산 정상 부근 소나무숲
 
소나무에 얹혀 있는 눈송이
▲소나무에 얹혀 있는 눈송이
 
정상에서 보는 태학산 너머 광덕산에 이르는 눈 덮인 산줄기를 따라 첩첩한 골짜기의 설경은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이 고장에서는 그런대로 봐줄 만하고 이 산자락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벌판은 하얀 눈에 덮여 고즈넉해 보인다. 그러다가 파란 하늘이 나타나기도 하고 다시 회색 구름이 몰려오기도 하고 그 구름 사이로 빛이 내려오기도 한다.
 
눈 덮인 배방산 정상
▲눈 덮인 배방산 정상
 
눈 덮인 광덕산까지 이어진 산줄기
▲눈 덮인 광덕산까지 이어진 산줄기
 
배방산 정상에서 본 눈 덮인 수철리
▲배방산 정상에서 본 눈 덮인 수철리
 
배방산 정상에서 본 풍세
▲배방산 정상에서 본 풍세
 
배방산 정상에서 세출리와 호서대학교
▲배방산 정상에서 본 세출리와 호서대학교
 
배방산 정상에서 본 구름 걷힌 파란 하늘
▲배방산 정상에서 본 구름 걷힌 파란 하늘
 
그렇게 산정에 한동안 머물다 내려오는 길, 경사진 언덕 아래 소나무숲길에서 큰 배낭을 멘 사람이 거친 숨을 내뿜으며 가파른 산비탈을 오른다. 다 늦은 오후,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산에서 이때쯤이면 하산을 하여야 할 시간인데 큰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는 젊은이가 의아해 '이 시간에 그렇게 큰 배낭을 메고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정상에서 야영하려고요'라며 걸음을 멈춘다. 다시 '이렇게 추운 날 어떻게 야영을 하려고 하느냐' 되물었지만, 나 역시 젊은 날에는 나라 안에서 설경이 좋다는 산마다 다니며 야영을 했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헛웃음이 난다.
 
큰 배낭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등산객
▲큰 배낭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등산객

다시 산을 오르는 젊은이의 뒷모습에서 지난날의 나를 보게 된다. 힘든 시간을 산이 주는 위로와 평안으로 버틸 수 있었던 젊은 시절, 저 젊은이처럼 배낭 하나 메고 무시로 산을 드나들던 내 모습을. 
  
아마 그도 산이 주는 위로와 평안을 찾아 이곳에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 산 정상에서 보낸 오늘 밤이 지나고 나면 좀 더 단단해지리라 믿는다.
  
산에서 내려와 조금씩 어두워지는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느 농가의 굴뚝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물 빠진 창터 저수지 앞 안내판
▲물 빠진 창터저수지 앞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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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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