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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 벽화마을에서 느림의 미학을 곱씹다

2020.10.20(화) 19:52:43양창숙(qkdvudrnjs@hanmail.net)

우리에게 골목길은 아련한 추억을 준다. 꼬불꼬불 좁은 길에 흙담장이 둘러쳐진 작은 골목길. 담장엔 호박넝쿨이 올라갔고, 담장 너머 뻗은 감나무 큰 키가 아득해 보이곤 했다.
 
골목길은 빠름을 재촉하는 요즘의 우리에게 느림과 여유를 주지만, 바쁠 것 하나 없었던 그 시절의 흔한 골목길은 지금 귀한 보석처럼 보기 어렵게 되었다.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 이인면사무소를 중심으로 그 오른쪽과 뒤편 마을의 골목골목에 벽을 채색해 조성한 예쁜 벽화마을이 있어서 찾아갔다.

벽화마을을 안내하는 초입 가옥과 화살표시가 여행객의 발길을 인도해 준다.
 
벽화마을이란 골목길 담벼락에 그림을 그린 마을을 말한다. 이 벽화마을은 공주시 이인면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노후한 집과 담벼락이 많은 마을에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벽화마을 작업이 진행되어 왔다.
  
삭막한 분위기였지만, 담벼락과 벽에 예술가들을 동원해 그림을 그려넣자 분위기가 바뀌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회화, 일러스트, 그라피티, 조형 미술 등 분야별로도 다양하다.
 
서울의 대표적인 벽화마을인 이화벽화마을, 경남 통영 동피랑마을, 마산 가고파 꼬부랑길 등 크고 작은 벽화마을 명소가 있다. 지금도 각 지자체는 물론 기업체와 문화예술단체, 봉사단체 등이 재능기부를 통해 마을 곳곳을 형형색색 물들이고 있다.
  
이렇게 벽화마을로 꾸미기 시작하자 청소년 탈선장소로 방치되던 골목에 변화가 왔고, 담배 꽁초와 쓰레기들로 지저분하던 후미진 거리가 산뜻한 명소로 바뀌기도 했다.
 
그렇게 이인면 낡고 음습한 골목길이 산뜻하게 단장한 채 환한 그림으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곳은 이인리 노인회관 겸 이장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다.

보다시피 장수가 말을 타고 달리는 그림이 눈길을 끈다. 이유는 이곳 이인이 백제시대에는 웅진(공주)과 사비(부여)를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위치해 육로는 물론 금강을 통한 교통의 요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조선시대에도 ‘이도역’이 존재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말이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그림이다.
 
조선 초기에는 44개의 역도(驛道, 요즘의 '00번 도로’)가 있어 하나의 역도에서 5~10개의 역을 관할했는데 세종 때 480여 개의 역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각 역에는 역장·역졸·역정(驛丁)이 근무하면서 조정에서 발급한 ‘마패’를 내보이는 관리에게 편의를 위해 말을 비롯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이를 감독하는 행정기관이 찰방(察訪)이었는데, 조선 말기까지 이인면 이도역에는 찰방이 존재했다. 말 그림이 이렇게 골목벽화에 등장한 연유는 대체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농가의 소 두 마리가 구유통의 여물을 먹는 저쪽 한켠에서는 주인이 말을 보살피는 그림이다. 한가롭고 정겨운 시골풍경 그대로다.
  

 
흙담장 골목길. 아릿한 옛 정취를 떠올리게 만든다. 좀 느리지만 곡선으로 이루어진 골목길에 더 익숙해져 있는 장년 세대의 사람들에게 골목길은 옛 동네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귀한 존재이기는 하다.

어릴 적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던 골목길. 차 소리 안 들리고 한가함과 느림의 시간이 있는 그런 골목길이 그래도 여전히 남아 있고, 또한 담장에 예쁜 그림까지 그려 넣어주었으니 이인면 주민들게 감사하다.
 

 
‘가스통’이라는 이름은 웬지 섬뜩한 느낌이 있다. 괜히 터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싶은 괜한 선입견 탓이기는 하지만 그림으로 감싸놓고 보니 훨씬 부드러우며 안정감이 생긴다.
  

 
두 갈래길 이정표도, 건물의 모서리도 각각 길 따라 방향 따라 그림이 이어져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벽화는 여행객을 지치지 않게 해준다.
 

 
사슴과 소나무, 누런 초가지붕. 소박한 풍경이다.
 

 
오래된 시골집이지만 벽화가 주는 생동감은 집과 골목, 마을과 주변 분위기를 밝게 해준다. 그림의 주인공이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행복이 느껴진다.
 

 
기타 연주하는 소년, 70~80년대 흔히 볼 수 있던 낭만적인 모습이다. 옆에서 연주에 맞춰 노래하는 소년은 지금 방탄소년단을 알까?
   

 
담장 너머로 흐드러지게 핀 꽃, 꽃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잘 키운 화초 덕분에 골목을 오가는 여행객들은 위안을 느낄수 있어 좋다.
  

 
앞서 언급한 노인회관 골목길로 커다란 수박과 과일을 그려놓아 여름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질 것 같다.
 

 
사과·딸기·복숭아…, 참 오래된 시골집인데 담벼락 사이사이 ‘숨구멍’이 있어 더 정겹다.
  

 

 
시골에서 골목길은 농작물을 말리는 건조장 역할도 한다. 골목의 담장은 그 보호막이 되기도 한다.
  

 
비오는 날, 커다란 토란잎을 따서 우산 대신 덮어쓰고 뛰던 추억을 추억을 그림에 담았다. 문득 황순원 선생의 소설 ‘소나기’가 떠오른다.
  
이인 벽화마을에서 소박하고 정겨운 벽화를 감상하고 나니 도시의 자동차 경적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큰 소음으로 들린다. 그 조용한 느림의 시간으로 다시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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