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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변 은빛 억새밭의 처연한 역설

백마강변 은빛 억새밭 풍경을 언택트로 만나기

2020.10.08(목) 16:57:31충화댁(och0290@hanmail.net)

은빛 장관이 연출되고 있는 백마강변 억새밭
▲은빛 장관이 연출되고 있는 백마강변 억새밭
 
우리 곁에 가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한 발자국 문을 열고 나가면 구절초가 핀 들판과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한 벌판도 우리를 유혹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밖으로 나가서 뭔가 예술적인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날들이다. 코로나19의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오른 요즘 저절로 언택트가 될 정도로 넓은 은빛 억새의 평원이 펼쳐진 곳이 있다.
   
부여의 랜드마크인 백마강 둔치에는 은빛 억새의 향연이 조용하게 펼쳐지고 있다. 황량하리만큼 넓은 둔치에는 사람들보다 새들이 더 많다. 억새풀 속에서 숨어살던 새들이 활개를 치고 떼를 지어서 억새밭을 날아다녀서 또 다른 볼거리도 제공해 준다.
 
비대면의 시기라 관광객들이 오지 않아서인지 새떼들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억새풀에 숨어서 지지배배 지저귀다가 한꺼번에 포르르 날아오르는 모습이 마치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웃는다는 소녀들이 몰려다니는 것 같다. 

동행 없이 혼자 조용히 억새밭을 찾아갔었다. 아무도 모르게 가을을 허전한 마음에 담아오고 싶었다. 억새밭에 숨어 몰래 가을을 느끼고 싶었다. 사람 키보다 큰 억새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혼자 걸으며 상념에 잠겨 보았다. 전염병의 시기가 아니었다면 몰려오는 사람들로 혼자만의 시간은 꿈도 꾸지 못할 일!
   
비옥한 밭이었던 백마강 둔치에 4대강 사업으로 단무지와 수박을 농사짓던 농사꾼들이 물러나고 억새와 갈대가 자리를 잡았다. 해질녘 강둑에서 억새가 ‘으악새 슬피 우는 소리’를 내는지 가만히 들어 보았다. 억새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를 그렇게 표현하다니. 역시 시인이다.
 

 
백마강에서 올라오는 바람에 억새들의 허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억새들이 흔들리는 모습은 은빛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머리를 빗는 여인처럼 유혹적으로 보인다. 바람과 억새는 관능적인 사이였다. 바람이 슬쩍 장난치듯 불어주면 갈대와 억새는 낭창낭창 허리를 흔들며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는 것 같다. 억새밭에서 불현듯 마릴린 먼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뉴욕 지하철 송풍구 바람에 밀려 올라가려는 하얀 원피스 자락을 손으로 부여잡고 있던 세기의 명장면이 연상된 것은 은빛이 주는 고혹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서이다.
 
이것은 억새.
▲이것은 억새
 
이 것은 갈대. 누가 억새보다 드세게 생긴 갈대에게 연약한 여자의 마음과 같다고 하는가 하는가
▲이것은 갈대, 누가 억새보다 드세게 생긴 갈대에게 연약한 여자의 마음과 같다고 하는가
 
사람들이 갈대와 억새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억새보다 갈대가 비유적인 표현에 더 많이 쓰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익스피어 같은 대문호가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하는 바람에 갈대는 연약한 여자의 이미지로 고정되었다. 그러다 보니 들판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서 있는 것들은 다 갈대로 인식하는 집단오류에 빠지게 된 것 같다. 아마 지금도 여전히 억새라고 쓰고 갈대라고 읽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갈대를 연약한 여자에 비유한 반면에 억새는 강인하고 희생적인 여인을 상징한다. 흔들리기는 해도 쉽게 꺾이지 않고 칼날을 숨겨 놓은 것 같은 잎을 지니고 있는 것이 억새이다.
 
지금 백마강가에서 은빛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억새는 외롭다. 사람들이 그립다. 갑자기 닥쳐온 비대면의 가을이 서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사람의 발길이 그리운 곳이 어디 한두 곳이랴.
 
은빛 머리를 쓰다듬으며 흔들리는 모습이 처연하게 아름다운 억새도 지금 비대면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억새밭의 장관을 감상하고 온 사람들이 친절하게 사진을 올려주고 있다. 인증샷이 아니다. 가을을 느끼고 감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억새와 함께 하는 명상의 시간을 비대면으로 즐길 수 있게 해주고자 사진가들이 나섰다.

올해는 사진가들이 SNS에 올려주는 사진만으로 가을을 즐기자는 뜻이다. 나훈아 콘서트도 언택트로 진행한 마당에 백마강 억새밭의 장관을 SNS로 감상하는 것쯤은 더 익숙할 것이다. 이제 백마강변 억새밭의 풍광은 사진가에게 맡기자. 비대면의 시대가 불러온 신풍속도를 서로의 SNS에서 찾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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