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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에 유일하게 남아 있다는 용강서원

2020.01.27(월) 08:22:50연주의 꿈꾸는 다락방(yeonju7890@naver.com)

금산에서 유일한 서원이라는 용강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광복 이후에 다시 복원된 곳입니다. 서원은 지역의 언론을 대변하는 공간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백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유림의 의견을 대변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용강서원으로 가는 길에 마을이름은 용화라는 마을입니다. 우리 고장 용화는 '용이 꽃을 피우는 곳'이라는 의미의 공간입니다.
 

 
한적하면서도 조용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서원입니다. 어죽으로 유명한 금산의 지역을 지나가면 나옵니다.
 

 
용강서원은 건물로는 5칸 규모의 강당이 있는데,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쪽은 좁은 공간으로 꾸몄던 곳에서 유림들의 의견을 듣고 조정에 올렸다고 합니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여론조사는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론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려면 여론에 휩쓸리지 않으면 된다고 합니다.  
 

 
올해는 총선이 있어서 그런지 여론조사 결과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가 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는 것이 여론이라고 합니다.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하고 순식간에 모든 정보가 전달되는 시기에도 민의에 묻고 답하는 올바른 여론결과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생각의 중립만 잘 잡으면 된다고 합니다. 
 

 
금강이 금산에 오면 적벽강이라고 불립니다. 아름다운 금산의 자연지형을 휘감아 돌아가기에 적벽강이라고 부르고 있는 곳입니다. 금산에는 서원이 거의 없는데 딱 한 곳만이 남아 있습니다. 적벽강을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한 금산(錦山) 용강서원(龍江書院)입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된 용강서원은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강서원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42년(1716)에 세워졌으며, 우암 송시열(宋時烈), 동춘 송준길(宋浚吉), 시남 유계(兪棨), 미호 김원행(金元行), 역천 송명흠(宋明欽)의 강학 활동이 이어졌던 곳이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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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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