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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가볼만한곳 홍주성 천년여행길

2019.12.14(토) 01:13:07푸른마음(gumle8234@naver.com)


 
겨울 찬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미고 홍주성 천년 여행길을 걷기 위해 홍성을 찾았습니다. 고려시대에 운주로 불린 이후 천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고장이지요. 운주로 시작되어 홍주로 불리다 일제강점기에 홍주군과 결성군을 합쳐 홍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홍주성 천년 여행길에서 만난 홍주성과 홍주의병기념탑 이야기를 펼쳐봅니다.
 

 
홍주성 홍화문으로 들어가 성곽길을 걸어봤는데요, 홍주성은 언제 처음 축성되었는지 알려진 바 없다고 하는데, 조선 초에 크게 수축해 전해 내려오다 1978년 지진에 의해 허물어진 것을 약 3년에 걸쳐 복원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서문과 북문을 철폐하고 성곽을 허무는 것을 읍민들이 강하게 반대하여 이만큼이나 남은 것이라고 하니 일본인의 만행으로 홍주성곽은 역사 속에 완전히 묻힐 뻔했습니다.
 

 

 
북문에서는 역대 목사들이 사형수를 처형하였으며, 1894년 갑오농민전쟁 때에는 잡혀온 농민군 수백 명이 처형되기도 했는데요, 홍주성은 조선 선조 때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싸움을 많이 치른 셈이라고 합니다.
 

 
홍주성 성곽 길가엔 마른 잎이 바람에 뒹굴고 가랑잎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걸어봅니다. 생을 다하고 떨어진 가랑잎을 보니 비움이란 단어가 뇌리를 스칩니다.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우듯 자연의 섭리 속에서 지혜를 깨닫게 합니다. 때가 되면 자연의 순리 속에서 쉼을 갖게 되고 다시 활기찬 생명은 빛과 더불어 초록으로 붉은빛으로 우리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가랑잎이 쌓여 황갈색 카펫을 깔아 놓은 듯한 곳에서 젊은 친구들이 가랑잎을 날리며 하하호호 밝은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화려했던 가을의 흔적으로 지금은 퇴색했지만 젊은 친구들에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즐거움이 되고 있는 것이지요. 바라만 봐도 예쁜 모습에 발길을 멈추고 한동안 바라보았답니다.
 

 
붉은 깃대를 따라 홍주성 성곽길을 걸어오면 홍성군의 읍내가 눈에 들어옵니다. 홍성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유명한 위인도 많이 난 곳이기도 합니다. 생가가 남아 있는 김좌진 장군, 만해 한용운뿐 아니라 고려 말의 명장 최영 장군, 사육신 성삼문이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성곽 밖으로 나오니 홍성 출신의 만해 한용운 선사, 백야 김좌진 장군 흉상 등이 있습니다. 이 두 분은 모두 일제강점기 때 독립을 위해서 활약했던 인물들이지요. 홍성이 이렇게 많은 인물들이 배출된 고장이라는 사실을 이번 홍주성 천년여행길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홍성에는 홍주, 홍주성이라 표기한 입간판을 볼 수 있지요. 홍주는 조선시대 충남 서부 해안 내로 지역 22개 군현을 관할하던 중심지였습니다. 홍성은 고려 현종 9년(1018)부터 홍주라 불리다 1914년 인근 결성군(현 결성면)과 합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홍성 100년, 홍주 1,000년입니다.
 

 
병오 항일의병기념비는 1906년 병오 항일의병이 일어났을 당시 홍주성을 탈환하여 지키고 있던 의병을 공격하다 관군과 일본군 일부가 죽었는데 이때 죽은 일본군을 위하여 1907년 김윤식이 시를 짓고 이완용이 글씨를 써서 애도한다는 의미로 애도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 애도비를 철거하고 병오 항일의병기념비를 세워 항일의병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홍주성 수성비는 순조 24년(1824) 황폐화된 홍주성 보수를 완공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홍주성 비석군은 본래 홍주성의 동문인 조양문 밖과 금마총 주변에 있었으나 주변이 개발되면서 각각 홍주성 안의 의병공원 부지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비석은 1824년 성벽과 건물을 수리한 것이 기록된 홍주성수성기적비입니다. 그리고 조선 중·후기에 홍성 목사를 지낸 5명의 홍주목사 선정비가 있습니다.


 
홍주성 내에는 홍주성 역사관도 있습니다. 성곽의 외형을 해치지 않고 반지하로 설계한 배려가 돋보입니다. 하늘에서 북이 떨어지는 천혜의 명당이라는 의미인 '천고 낙지의 땅 홍주'를 주제로 홍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찾아보는 역사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홍주의병기념탑
 
의병 항쟁은 1895~1896과 1906년 2차례에 걸쳐 전개되었다고 하는데요, 친일내각의 갑오전쟁과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단발령 등에 반발한 것이지요. 1차는 이승우의 배반으로 실패했고, 2차는 비인과 남포 읍성·서천· 보령 일대에서 승리를 했으며 홍주에 입성하여 홍주성을 탈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일본군의 화력 앞에 순절한 것입니다.


 

 
백년의 홍성·천년의 역사 홍주,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온 가족이 홍주성 천년 여행길을 답습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홍성의 역사을 이해하고 홍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등의 인물, 순교자, 의병 등을 알게 되어 학습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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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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