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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천주교 순례여행지

2019.12.09(월) 12:30:01쟈스민(mee0102@naver.com)



보령 갈매못순교성지를 다녀왔다. 성인들의 활동이 많은 충남에는 여러 성지들이 있지만 보령은 오천항과 가까워 멋진 바다 절경을 보여주는 특별한 성지가 아닌가 한다. 바다와 함께 하는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초겨울이나 다름없었지만 성지에는 벚나무 단풍이 곱게 물든 늦가을의 풍경을 덤으로 만날 수 있었다.
 

 
보령 갈매못은 우리나라의 마지막 천주교 박해인 병인박해(1866년) 때 신앙 선조들이 순교하신 고통의 현장으로 특히 다섯 분의 천주교 성인인 다블뤼 주교, 오매트르 신부, 위앵 신부, 장주기 요셉, 황석두 루카가 순교한 후 인근 모래사장에 묻힌 곳이다.
 

 
원래 보령 갈매못은 '갈마연'에서 온 말로 '갈증을 느끼는 말이 목을 축이는 연못'이란 뜻이었으나 다섯 분의 성인이 내린 축복으로 순교자들의 신앙을 이어가려는 순례자들에게 생명의 물을 공급하는 영원한 샘이 되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요한4,14
 

 
다섯 성인의 선교활동과 순교하기까지의 발자취는 보령 갈매못성지 기념관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단풍 고운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예수의 길과 다섯 성인의 길을 되뇌어 본다. 안내문에 의하면 다블뤼 주교는 1845년에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하여 교회사를 편찬하는 등 전교사업을 하다가 1866년 3월 8일 제5대 조선교구장에 임명된 합덕 거더리에서 성서 번역과 저술작업으로 다블뤼 주교를 돕던 황석두 루카와 함께 붙잡혔다.
 

 
이 소식을 들은 오매트로 신부는 수원 샘골에서, 위앵 신부는 합덕 세거리에서 주교가 잡힌 거더리로 스스로 찾아가 함께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구류간에 갇히어 심한 신문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호교론을 폈다.
 

 
3월 23일 대원군은 다블뤼 주교를 비롯한 4명의 처형을 임금에게 상소, "타인에게 경고가 되도록 참수하라"는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당시 혼인을 앞둔 왕인 고종의 국혼에 좋지 않다는 무당과 점쟁이들의 말에 따라 서울에서 250리 떨어진 보령수영에서 처형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다블뤼 주교와 함께 형장으로 보내달라고 청한 요셉이 합류하면서 다섯 분은 고문을 당한 불편한 몸으로 서울에서 부터 걸어서 3월 29일 이곳에 도착, 주의 수난일에 죽게 해 달라는 다블뤼 주교의 요청에 따라 3월 30일 다블뤼 주교와 오매트르 신부, 위앵 신부, 루카, 요셉 순으로 순교했다. 순교후 신자들이 성인들의 유해를 오천면 갈매못 순교성지부터 미산면 서짓골 성지로 바닷길과 산길을 통해 12일간 풍랑과 뇌우 속에서 운구하여 안장하였다고 한다.
 

 
순교한 다섯 성인의 동상이 갈매못 성당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신자들이 성인들의 유해를 12일간 운구하여 안장하였던 갈매못에서부터 서짓골은 천주교 성지 순례길이기도 하다. 성인들을 생각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순례하거나 종교와 상관없이 한 해를 정리하며 자신을 돌아보며 걸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보령 갈매못순교성지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천해안로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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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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