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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석오 이동녕 생가에 찾아온 가을

2019.10.29(화) 21:58:51그여자(smallb1@naver.com)

천안 석오 이동녕 생가에 찾아온 가을

안개 낀 가을 아침,  
천안시 목천읍에 위치한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를 찾았습니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 바친 석오 이동녕 선생이 태어난 곳이고 9칸 반 크기의 안채와 사랑채가 있었으나 지금 건물은 원래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
 
생가 한쪽에는 천안 관광안내소가 설치되어 있고 생가 맞은편에는 이동녕선생기념관이 위치하고 있어 이동녕 선생의 다양한 업적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생가터 주변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이제 조금씩 물들어가는 단풍나무가 가을의 정취를 더해줍니다. 흑성산 맞은편에 위치한 이곳은 일교차가 크고 용연저수지와 병천천이 흘러 안개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라 이른 아침에 찾으면 안개가 흐르는 몽환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생가 앞에는 이동녕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단풍나무 사이로 그 모습을 담아봤습니다.
바닥엔 노랗게 은행잎과 은행이 떨어져 가을 느낌을 더해주고 아직은 연둣빛이 강한 단풍잎과 대조되어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는 느낌이 드는군요.
 

△이동녕 선생 동상 뒤쪽에서 담아본 생가터 풍경
 
작은 은행나무는 뭐가 그리 급한지 벌써 다 쏟아져 버렸네요. 이번 주가 지나면 은행잎은 모두 저물어 버릴 거 같습니다.
 

 
생가 내부로 들어가면 ㄷ자 형태의 가옥이 유지되고 있고 기와 너머로 가을 옷을 갈아입고 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나무들은 매년 백로와 왜가리가 찾아와 집단 서식하는 곳입니다.
 

 
석오 이동녕 선생은 1869년에 태어나 1904년 상동청년회에 가입하여 애국계몽운동에 투신하고 1905년 을사 늑약이 체결되자 이상설 등과 북간도 용정으로 망명하여 서전의숙을 설립하였습니다. 1907년 귀국해 안창호·김구 선생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였으며 1910년 다시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1919년에 상해임시정부의 의정원 원장이 되었고 국무총리, 국무위원 주석을 맡아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1935년 한국국민당 당수로 활동, 1940년 중국 사천에서 지병으로 영면해 현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광복 후인 1962년, 선생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고 1984년 유해를 효창공원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천안 목천에 위치하고 있는 독립기념관에서 이곳 이동녕선생 생가까지 역사 문화 둘레길로 연결되어 있으니 독립기념관을 방문하신다면 이곳까지 한적한 시골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석오 이동녕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역사 여행을 도보로 즐겨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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