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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학(金石學)의 이상향을 꿈꾼 추사 김정희

추사고택에서 만나는 종가유물 특별기획전

2019.09.15(일) 22:10:55하늘연달열이레(msy.sm94@gmail.com)

서예는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예술분야입니다. 상형문자인 한자의 회화성과 유교문화가 가지는 문자숭상이 결합돼 있습니다. 갑골문자에서 시작된 한자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 다양하게 변화하면서 많은 서예가를 탄생했고 김정희는 ‘추사체’라는 자신의 이름(호)이 붙은 서체를 후세에 전하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 고택1.
▲ 사 김정희 고택 전경1, 왼쪽은 추사의 묘
 
추사 김정희 고택 전경2.
▲추사 김정희 고택 전경2
 
추사 김정희 고택 전경 3.
▲추사 김정희 고택 전경3
 
‘예산’지명 1100주년을 기념하는 ‘추사고택 종가유물 특별기획전’이 오는 11월3일까지 추사기념관에서 열리고 있어 다녀왔습니다. 추사고택과 기념관, 특별전관람은 모두에게 무료입니다.  
 
기획전 전시품은 추사고택에서 나온 김정희 가문의 고유문(과거합격 등 가문의 경사에 조상에게 바치는 축문)과 장서인(책의 소장자가 소유물로 표시한 인장)이 찍힌 수택본, 현판 등 희귀 유물입니다.
 
추사 김정희 기념관에 종가유물 특별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추사기념관에 '추사고택 종가유물 특별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추사 기념관 2층에서 열리는 추사
▲추사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추사고택 종가유물 특별기획전'
 
김정희는 예술가이지만, 사실에 의거해 진리를 찾고자 했던 과학자이며 실학자입니다. 그가 24세 되던 해에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燕京)에 갔다가 그곳에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교분을 쌓으며 금석학과 서예, 전각 등을 익혀 훗날 추사체 탄생의 기틀을 다졌다고 합니다.
 
추사기념관에 세워진 김정희 상
▲추사기념관에 세워진 김정희 상
 
금속이나 돌에 새긴 글씨나 그림을 해석하는 금석학의 대가로 당시까지 ‘무학대사비’만 알려졌던 북한산 '진흥왕순수비'의 실체를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역사지식뿐 아니라 천문과 지리 등 다양한 과학지식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추사기념관 1층 전시장에 마련된 김정희 성장기
▲추사기념관 1층 상설전시장에 마련된 김정희 성장기
 
추사기념관 1층 전시장에 마련된 김정희 성장기
▲추사기념관 1층 상설전시장에 마련된 한국과 중국의 서예학
 
함경도 함흥 황초령의 ‘진흥왕순수비’ 역시 김정희와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그의 헌신적 노력으로 땅속에 40여 년간 묻혀 잊어질 뻔했던 비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진흥왕순수비가 없었다면 삼국시대 정확한 영토구분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특별전에는 각종 현판과 탁본도 눈길을 끕니다. 서산 상왕산 개심사 산신각 인근에 모신 11대 조모 황씨 묘비를 비롯해 농사짓는 시기를 알려주는 농상실 등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추사고택 종가유물특별전의 333333
▲추사고택 종가유물특별전에 공개 중인 상산황씨(尙山黃氏) 묘석 탁본
 
추사고택 종가유물특별전에 공개중인 333333
▲추사고택 종가유물특별전에 공개중인 현판 농상실(農祥室)
 
김정희가 쓴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은 해남 대흥사 등 전국 여러 곳에서 전합니다. 이곳에 전시된 것은 집안 조상들의 명복을 비는 원찰(願刹)인 화암사의 것입니다. 제주에 유배된 김정희가 시경루(詩境樓)와 함께 써 보낸 것입니다. 이 같은 사연은 제주에서 동생에게 쓴 편지를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추사고택 종가유물특별전에 공개중인 화엄사 무량수각
▲추사고택 종가유물특별전에 공개 중인 화엄사 현판 무량수각(無量壽閣)
 
추사고택 종가유물특별전에 공개중인 숫
▲추사고택 종가유물특별전에 공개중인 화엄사 현판 시경루(詩境樓)
 
어필 매죽헌(梅竹軒)도 전시되고 있습니다. 영조가 사위인 김한신에게 하사한 현판입니다. 매죽은 매화와 대나무의 변치 않는 절의를 상징합니다. 후대 김정희 가문이 서울 집을 정리하고 예산으로 가져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추사고택 종가유물특별전에 공개중인 333333
▲추사고택 종가유물특별전에 공개중인 영조 어필 '매죽헌(梅竹軒)' 현판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화엄사는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동생 산천 김명희의 ‘화암사중수건기’에 의하면 폐사였던 절을 집안 가호(원찰)의 의미를 담아 중건했다고 하며, 화엄사라는 이름은 영조가 명명했다고 합니다.
 
추사고택 종가유물특별전에 공개중인 화엄사(화엄사) 현판.
▲추사고택 종가유물특별전에 공개중인 화엄사 현판
 
추사고택은 그의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대왕의 사위(부마)가 되면서 예산과 서울에 각각 저택을 하사받은 것에 기원합니다. 예산집의 규모는 53칸인데 충청도 53개 군현에서 한 칸씩 건립비용을 분담했다고 합니다. 1976년 일부를 복원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 기념관에 전시중인 추사고택 모형.
▲추사기념관 1층 상설전시장의 추사고택 모형
 
고택을 들어서 먼저 마주하는 사랑채는 ‘ㄱ’자 남향집으로 온돌방과 대청, 마루의 구조입니다. 대청 쪽으로 난 문은 모두 ‘들어열개문’으로 위로 활짝 열 수 있는 개방형 구조입니다. 손님을 접대하고 문화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사랑채 특성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추사고택 사랑채 전경1.
▲추사고택 사랑채 전경1
 
추사고택 사랑채 전경2.
▲추사고택 사랑채 전경2
 
추사고택 사랑채 전경3.
▲추사고택 사랑채 전경3

이어지는 안채는 ‘ㅁ’자 모양의 6칸 대청에 안방, 건너방, 부엌, 광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생활공간으로 밖에서 바로 들여다보이지 않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안채 부엌은 난방용으로만 사용되고 요리는 별도의 부엌을 설치하는 왕실 주택구조를 택했습니다. 이는 영조의 딸인 화순옹주가 살았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추사고택 안채 전경 1.
▲추사고택 안채 전경1
 
추사고택 안채 입구 전경2.
▲추사고택 안채 전경2
 
추사고택에는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김상무가 세운 ‘영당’이 있습니다. 추사체 현판 ‘추사영실(秋史影室)’은 김정희의 평생 벗 권돈인의 글이라고 합니다. 제자인 이한철은 대례복을 입은 김정희의 초상을 그렸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초상화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현판 원본은 간송박물관에 있어 진품을 만나지 못하는 점입니다.
   
추사고택 추사영실 전경 1.
▲추사고택 추사영실 전경
 
추사고택 추사영실 초상1.
▲추사고택 추사영실 초상
 
초산 유최진(1791~1869)은 추사 김정희를 평(評)하면서 “글씨의 묘를 참으로 깨달은 서예가는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법”이라며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증조부로부터 후손에 이르기까지 예산 용궁리 일원에 정착한 추사 김정희 가문에 전해지는 중요 자료와 유물을 이번 종가유물 특별기획전에서 마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추사고택 체험관 전경.
▲추사고택 체험관 전경

추사고택 인근 관광안내도와
▲추사고택 인근 관광안내도와 위생업소 QR코드
제4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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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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