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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무령왕릉

공주 송산리고분군을 찾아서

2013.08.19(월) 00:30:56쟈스민(mee0102@naver.com)

 

 유난히 파란하늘에 빠알간 배롱나무꽃이 꽃망울을 막 터트릴 즈음 공주 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을 찾았다. 

공주 송산리고분군은 현재 공주시 금성동과 웅진동에 자리잡은, 옛 지명인 공주읍 송산리 송산의 남쪽 경사면에 있던 웅진시대 백제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다. 원래 17기의 무덤이 있었지만 현재는 무령왕릉을 포함하여 1~6호분까지 7기만 복원되어 있다.
 
공주 송산리고분군은 만들어진 형태에 따라 굴식돌방무덤과 벽돌무덤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1~5호분은 백제가 전통적으로 사용한 굴식돌방무덤으로, 돌로 널방을 만든 후 천장을 돔형태로 둥글게 처리하였고 6호분과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으로 터널형 널방 앞에 짧은 터널형 널길을 가지고 있다. 무령왕릉을 제외한 나머지 무덤들은 도굴로 인해 부장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웅진시대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활발했던 대외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실제의 고분군은 보존상의 문제로 내부를 관람할 수 없지만 송산리고분군 모형전시관에서 실제와 같은 규모의 송산리 5호분과 6호분, 무령왕릉의 모형을 통해 무덤의 내부를 살펴볼 수 있다.
 


 

 ▲ 송산리고분군 모형전시관
 
  

 

▲ 송산리 6호분
  

▲ 송산리6호분 내부 모형
벽돌무덤으로 벽면에는 등잔을 올려놓는 등감을 설치하였고 네 벽면에 회를 바르고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를 그렸다. 목관을 올려놓았던 관받침대가 하나인 것으로 보아 한 사람만 묻혔던 것으로 보인다. 벽돌에 새겨진 명문의 내용을 통해 중국 양나라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 송산리 5호분
  

▲ 송산리5호분 내부 모형
굴식돌방무덤이다. 바닥에는 목판을 올려놓는 관받침대 2개가 있다.
도굴로 인해 토기 1점과 약간의 장신구, 관못만이 남아 있다.
  

 

▲ 무령왕릉

  

▲ 무령왕릉 내부 모형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무덤이다. 무덤의 형태는 중국 남조에서 유행하던 벽돌무덤으로 널방은 연꽃무늬를 새긴 벽돌로 쌓았고 벽면에는 등잔을 올려놓았던 등감과 창문시설이 있다.
특히 입구에서 출토된 지석이 무덤의 주인공과 무덤을 만든 연대를 말해주고 있다. 송산리고분군에 있는 무덤 중에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것으로 왕과 왕비의 금제 관장식을 비롯한 총 108종 4,6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무령왕릉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무령왕릉이 발견되면서부터 밝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령왕릉 자체의 가치뿐만 아니라 그 안에 부장되어 있던 4,600여 점의 유물들 하나하나가 백제의 정신이자 백제문화를 말하는 것이다.
 
특히 매우 정교하고 화려한 금속공예품은 고품격과 고도의 제작기술을 보여주어 당시 백제 장인들의 예술적 감각과 금속을 다루는 기술수준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출토유물인 묘지석을 통해 무령왕이라는 확실한 연대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한국고대사와 동아시아의 역사를 올바르게 표기할수 있는 유용한 지표가 되었고 당시 동아시아 및 삼국관계에 차지하는 백제의 위치를 이해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공주시내
 

 

 ▲ 송산 정상부에서 바라본 송산리고분군과 공주시내
  

공주 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
충남 공주시 금성동 산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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