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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이고 뭐고 받으면 다시 갚아야 혀"

원유유출 사고 5년, 태안 소원면 의항리 주민에게 듣다

2012.12.05(수) 17:34:49충남사회서비스원(https://cn.pass.or.kr/)

5년전 원유유출때 직격탄을 맞았던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구름포 해변.

▲5년전 원유유출때 직격탄을 맞았던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구름포 해변. 철 지난 바닷가라고 하지만 관광객 한 명없이 쓸쓸하다. 



5년 전인 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군 앞바다에 정박 중이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삼성중공업 크레인선과 충돌하면서 원유 1만 900톤이 유출되는 사상 최악의 해양 오염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흘러나온 원유는 충남 서해안은 물론 전라도에 이르기까지 무려 375㎞의 해안선을 덮쳤는데요. 특히 청정해역을 자랑하던 태안군 일대는 검은 기름으로 심각한 손해를 입었습니다.

사고 이후 신선한 해산물과 찾아오는 관광객에 기대어 살아가던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습니다. 실제 수산물유통정보를 보면 태안군의 수산물 위판실적은 원유유출 사고 직전인 2007년에 1만 4,146톤이던 것이 사고 이듬해 2008년에는 7,782톤으로 급감했고요. 이 여파가 계속되면서 지난해에는 7,354톤으로 더욱 감소했습니다. 또 태안을 찾은 관광객은 2007년 2,088만 명이던 것이 2008년에는 485만 명으로 2/3 이상 줄었고, 지난해에도 787만 명에 그쳤다고 합니다.

태안 원유유출 사고 5년을 맞아 사고 장소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어 가장 먼저, 가장 많은 기름을 뒤짚어쓴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를 찾아가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찬바람이 불던 의항리 해변에는 찾아오는 관광객 한 명 없이 을씨년스런 분위기 속에서 마을 주민 몇몇이 굴을 채취하고 있었습니다. 다가가서 말을 붙여보면 하나같이 듣는 둥 마는 둥 무뚝뚝하고 짧은 대답만 돌아옵니다.

구름포 해변에서 굴을 채취하고 있는 의항리 주민.

▲구름포 해변에서 굴을 채취하고 있는 의항리 주민.



양식업의 몰락…희망없는 하루 벌이

“말씀이고 뭐고 기막히게 살아~.”사고 5년이 지난 요즘 삶이 어떠냐는 질문에 신정순(80) 할머니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답합니다.

구름포 해변에서 굴을 따던 신 할머니는 “얘기하면 굴을 조금밖에 못 깐다”면서 바쁜 손놀림을 멈추지 않습니다. “하루 만 원도 벌고, 이만 원도 벌고….” 특히 이날처럼 조수가 '조금'일때는 더 서둘러야 한다고 합니다.

신 할머니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 상당수는 원유유출 사고 이전에 굴 양식장을 했었지만, 사고로 양식장이 폐허가 되면서 모두 철거됐다고 합니다. 이후 바다에서의 생산 활동은 막혔고, 그나마 작년부터는 이렇게 자연산 굴 채취라도 하게 됐다고 합니다.

5년 전 사고가 났을 때 상황을 물으니 신 할머니는 “놀래기만 혀~? 못 산다고 그랬지, 기름 들어오고 몇 년은 일도 못했어, 죽지 못해서 살았네”라고 말합니다.

‘죽지 못해서 살았네….'란 말이 원유유출 사고 이후 바닷가 사람들의 생활을 짧으면서도 가장 확실하게 나타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는 배상도 5년 세월에 지친 듯 남의 일처럼 말합니다.

옆에서 굴을 캐던 다른 할머니도 “주는 대로 받아야지 뭐…”라고 거듭니다. 복잡한 배상 절차에 대해 도움이 절실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갯바위에 붙은 굴을 채취하지만 이전보다 양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갯바위에 붙은 굴도 이전보다 양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갈 길 먼 배상 절차에 체념 아닌 체념만

“배상이고 뭐고 받으면 다시 갚아야 해서 기대도 안혀.” 파도치는 신너루해변 갯바위에서 굴을 캐던 윤순재(75) 할머니에게 배상액 결정애 대해 물었더니 대뜸 말합니다.

윤 할머니 역시 사고 전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굴 양식을 했다는데요. 원유유출로 양식장이 파괴되고, 설상가상 할아버지마저 치매가 와서 혼자 맨손어업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사고 전에는 할아버지도 건강하고 어떠했느냐고 물으니 “그 때는 집집마다 양식 굴 해서 좋았지”라고 옛일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추억입니다.

“(맨손어업) 이거라도 해먹을라는데 아주 힘들어, 삼성이 보상이나 주면 어쩔까, 주지도 않고….”

게다가 윤 할머니는 사고 후 지원금 400만 원을 받았는데 이를 갚아야 하는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때는 돈 주길래 그냥 쓰는 줄 알았거든. 근데 작년에 갚으라고 하는 거야, 정부에서.”
“아들에게 어떡하면 좋으냐고 했더니, 아들이 연기 신청해줬어.”

그래서 윤 할머니는 사고 전 양식업에 대한 보상을 받아도 융자를 갚고 나면 남는 게 없을 거라며 걱정을 했습니다.

인근에서 만난 다른 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나이 64세로 이곳에서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한 그분(이름 밝히는 것은 한사코 거부) 역시 “피해 배상 청구? 그래야 시설비도 안되지”라며 기대를 저버리는 모습입니다.

“사고 전에는 양식 굴이 많았는데, 지금은 철거돼서 그것도 없고, 이런 식으로는 살기가 어려워요.”

신너루 해변에서 만난 주민.

▲신너루 해변에서 만난 주민.


 
지역 경제 타격속 인심까지 예전 같지 않아

원유유출 사고는 어업인에만 타격을 준 것이 아닙니다. 숙박, 식당 등 관광업을 포함해 지역 풀뿌리 경제 전체가 심각한 상태를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항리에서 평생 민박업을 하는 이병석(72) 할아버지는 “한 번 황폐해지니까 사람이 안 오고, 용기도 잃어가고 있지.”라고 말합니다.“사고가 난 후 손님이 1/3로 줄었어. 민박 피해 배상 신청을 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

이 할아버지 역시 보상 절차에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게다가 사고 이후 팍팍해진 살림 탓에 마을 사람들의 인심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합니다.

설상가상, 이 할아버지는 지난해 뇌종양 수술까지 받아 언행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입니다. "사고가 나고 계속 도로작업을 했어. 그 때문에 생긴병이지." 아무래도 자신의 질병이 방제작업 영향 아니겠냐고 합니다. 뇌졸중으로 먼저 간 동네 친구 이야기를 꺼내며 방제작업 이후 주민 건강문제도 조심스럽게 꺼냅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방제에 참여했던 해변. 그날의 흔적을 사라졌지만 마을 주민들의 아픔은 여전하다고 한다.

▲자원봉사자들이 방제에 참여했던 해변. 그날의 흔적을 사라졌지만 마을 주민들의 아픔은 여전하다고 한다.



“정부가 아픔을 매만져줄 수 있는 게 필요한데….”

이 할아버지가 혼잣말하듯 내뱉은 말입니다. 이 말이 어쩌면 가장 큰 대책이자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민들은 사고 5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지역의 상황은 심각한데, 정부는 그동안 ‘남의 일 보듯’ 했다는 거지요. 그나마 최근 국회에서 태안유류피해대책특별위원회가 구성된 것은 다행이라는 분위기 입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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