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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주박물관-무령왕릉 발굴 50년 특별전(~2022. 3.6.)

2022.03.03(목) 05:37:45젊은태양(claudi00@naver.com)

1971년에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2021년에 발굴50년을 맞았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2021년 9월14일부터 무령왕릉 발굴50년 특별전을 열고 있다.
국립공주박물관은 해방 후 1946년 4월에 국립박물관 공주분관으로 출발했다.
이번 특별전시에서는 무령왕릉 출토 유물 5,232점 전체를 공개하고 있다.
기획전시실 입구에서는 나태주 시인의 시, '생각해 보면 꿈결 같아라'를 볼 수 있다.

왕릉의 입구 같은 전시실에서 무령왕의 훙상을 먼저 만난다. 무령왕은 백제 제25대 왕으로 501년~523년까지 재위했다. 무령왕은 백제가 혼란한 상황이었던 시기에 왕좌에 올라 백제를 구하고, '누파구려 갱위강국'(고구려를 여러차례 깨뜨려 다시 강국이 됐다)을 알렸다.

전시실 중앙에는 왕릉 입구부터 목관까지 놓여있던 위치를 그대로 보여준다. 입구에는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리는 지석이 있고 그 위에는 오수전(중국 남조 양무제 때) 한 꾸러미가 있다.
석수는 상상의 동물로, 벽사의 의미로 묘실 앞에 놓는 진묘수의 일종이다.
석수 뒤로는 제사상이 있고, 청동제 식기와 수저 세트가 놓여있다.
목관은 일본 규슈의 금송으로 만들었고, 왕의 관에만 마구리 장식을 했다.

왕비 머리 부근의 은잔은 극락정토 같은 그림이 새겨져있고, 잔 받침은 청동이다.
왕의 관꾸미개는 금을 얇게 두드려서 인동초와 꽃무늬를 맞새김해서 한 쌍을 만들었다. 왕비의 관꾸미개는 금으로 연꽃, 인동초 무늬를 만들었고, 꽂이는 청동이다.
왕의 칼, 허리띠 고리, 귀걸이, 금테목걸이, 금뒤꽂이 등과 함께 청동거울도 여러 개 있다. 청동거울은 모두 국보이고, 중국 한대의 거울을 원본으로 백제에서 제작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왕의 은제 허리띠에는 금은 허리띠드리개가 있다.
왕과 왕비의 손칼과 흩어진 채 발견된 금구슬, 은구슬이 수백 점이다.
왕비의 금목걸이는 9절과 7절로 된 것이고 흩어진 채 발견된 금구슬이 매우 화려하다.

삼국사기에는 '갱위강국' 기록이 있고, 정약용은 '여유당전서'에서 '삼한 가운데 백제가 가장 강하고 문화가 발달했다'라고 썼다.
양직공도는 중국 양 무제의 아들이 외국 사신을 접견하며 사신의 모습을 그리고 관계와 공닙품을 기록한 것인데, 백제를 한반도 남쪽 9개 소국을 아우르는 대국으로 표기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는 왜국 사신인데, 맨발에 옷차림이 초라하다.

무령왕릉에서 ?어진 채 발견된 금은동 재질의 여러 꾸미개로 벽면에 작품처럼 걸었는데, 옷이나 관덮개 등의 천에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비에서는 관람객들이 발굴 50년 특별전 감상을 적고 있다. 어린이체험관 입구에는 충남 대전 세종 박물관 여행 스탬프를 찍는 곳이 있다.

무거운 가방이나 겉옷은 사물함에 넣고 관람하면 편하다. 백 원 동전이 필요한데, 사용 후 반환되고, 유모차와 휠체어도 무료사용이다. 사용한 유모차와 휠체어는 외부주차장에서도 반납할 수 있다. 외부주차장에는 음료수 자판기가 있는 나눔공간 쉼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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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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