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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고택에서 한국의 멋을 느껴보세요

2019.11.24(일) 13:32:31조주부(imjo_@naver.com)

늦가을 추사고택을 다녀오다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는 글과 그림, 글씨가 독창적이며 이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며 예술가입니다.

추사고택은 김정희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입니다.
예산은 조상의 터전이 있는 곳이라 김정희가 성묘와 독서를 위해 자주 왕래하며 머물렀다고 합니다.

추사고택을 들어서면 보이는 사랑채입니다.

사랑채는 ㄱ자 남향집으로 온돌방이 남쪽에 한 칸, 동쪽에 두 칸 있으며, 나머지는 대청과 마루로 되어있습니다.
대청쪽으로 난 문은 모두 들어열개 문으로서 위로 활짝 열 수 있어 개방적입니다.
손님을 접대하고 문화적인 유희를 즐기는 곳인 사랑채의 특성이 잘 살아있는 구조입니다.

안채는 ㅁ자 모양으로 6칸 대청에 안방, 건넌방, 부엌, 광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청 대들보에는 김정희 선생이 쓴 것으로 보이는 글씨가 붙어있습니다.

여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는 밖에서 바로 들여다보이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안채내의 부엌은 난방용으로만 쓰이고 요리를 위한 부엌은 따로 두었는데요, 이는 왕실 주택 구조로서, 왕실 사람인 화순옹주가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서울 장동(현재 통의동)에 위치하였으나 집이 너무 크다 하여 월성궁 간신들이 영조 대왕께 상소하여 현재의 신암으로 장동에 있던 집을 뜯어다가 53칸의 집으로 추사의 증조부이신 월성위 김한신께서 건립하였습니다.

266.11㎡(80.5평) 크기의 추사고택은 안채, 사랑채, 문간채가 있습니다.

영당은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김상무가 세웠습니다.
김정희 평생의 벗 권돈인은 영당 세우는 일을 돕고 추사체로 추사영실(秋史影室) 이라는 현판을 직접 썼습니다.
김정희의 제자였던 이한철에게는 대례복을 입은 김정희의 초상을 그리게 했는데요, 권돈인은 이 초상화에 찬문을 쓰고, 김정희를 추모하는 여덟 수의 시를 지어 김상무에게 주었습니다.
현재 초상화의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현판의 원본은 간송미술관에 있습니다.

추사고택은 오랜 시간 보존,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추사고택을 나와 우물로 가는 길목의 예쁜 단풍 나무들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흐렸던 날임에도 불구하고 돌담과 단풍나무가 너무 멋진 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의 멋, 한국의 가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추사고택 옆 우물은 가문 대대로 이용해 온 우물로, 우물에는 김정희의 출생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옵니다. 민규호가 쓴 ‘완당김공소전’에 따르면 어머니 유씨가 임신한 지 24개월만에 김정희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 무렵 우물물이 갑자기 마르고, 뒷산인 팔봉산의 나무들이 시들었다가 김정희가 태어나자 우물 물이 다시 샘솟고 나무들이 생기를 되찾았다는 내용입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추사고택)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매일 09:00-18:00
관람료 무료
제4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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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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