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00501/IM0001577510.jpg)
![](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00501/IM0001577511.jpg)
제민천을 지나가는 길에 알록달록한 철쭉에 시선이 사로잡혀 이곳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곳곳에는 벤치가 놓여 있고, 양 옆에는 그늘을 피해 쉬어갈 수 있는 원두막도 놓여 있습니다.
잠시 쉬어갈 겸 신발을 벗고 원두막으로 올라가 발라당 누워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느긋한 휴식입니다. 이 공원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옹기종기 앉아 있는 할머니 세 분뿐, 눈치볼 것도 바쁠 이유도 없습니다.
![](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00501/IM0001577512.jpg)
![](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00501/IM0001577513.jpg)
당간지주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반죽동 대통사지입니다. 대통사지 한 편에는 당간지주가 놓여 있습니다. 길쭉한 모양의 기둥이 놓여 있고 주변에는 펜스로 경계를 두었습니다.
당간지주란 야외 법회 때 괘불을 걸기 위해 세우는 장대(당간)을 지탱하는 돌기둥을 말합니다. 괘불이란 부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거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러한 당간지주는 다른 사찰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00501/IM0001577514.jpg)
![](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00501/IM0001577515.jpg)
제민천 곁에는 백제탑 모형이 우두커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당간지주가 있다는 건 이곳이 사찰의 터였다는 뜻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이 일대에서 석조 2기(돌로 만든 건축물 2기)와 '대통'이라는 이름이 명확하게 새겨진 기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이 대통사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통사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유사'의 기록입니다.
![](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00501/IM0001577516.jpg)
![](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00501/IM0001577517.jpg)
지나칠 때마다 그저 잠깐 쉬었다 갈 수 있는 너른 공원인 줄로만 알았는데 백제의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인 대통사의 터였다니! 머릿속으로 사찰의 그림을 그려봅니다.
어떤 그림이 펼쳐졌을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절터는 현재 관광객보다는 동네 주민들이 잠시 쉬어갈 겸 들르는 쉼터가 되었습니다.
![](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00501/IM0001577518.jpg)
![](http://www.chungnam.go.kr/export/media/article_image/20200501/IM0001577519.jpg)
평온하게 흘러가는 오후입니다. 군데 군데 핀 알록달록 철쭉 덕분에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이곳이 절의 터라는 것도 배워갈 수 있었습니다.
역시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가 봅니다. 하나 더 알게 된 쉼, 그것만으로 충분한 오후입니다.
![제4유형](/images/multiMedia_new/contents/ccl4.gif)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