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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의 계절, 예산 가볼만한곳 윤봉길의사 유적

2019.11.21(목) 19:37:50푸른마음(gumle8234@naver.com)


 
지난주 예산 여행으로 윤봉길 의사 유적지를 찾았습니다. 충의사·기념관·생가 등으로 구성된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은 덕산면에 위치해 있으며 매년 4월이면 윤 의사를 추모하는 매헌문화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날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변엔 온통 태극기가 물결을 이루고 있었는데요, 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주차장에서 언덕으로 올라가면 윤봉길 의사의 충의사가 있고 또 100m쯤 더 가면 윤봉길 의사가 성장한 '저한당'이 있습니다. 저한당으로 가는 넓은 잔디마당엔 은행나무가 노란 옷을 입은 듯 화사했으며 떨어진 은행잎은 마치 노란 카펫을 깔아 놓은 것 같았어요. 가을이 짧아 만추의 계절도 만끽 못 하고 놓칠 때가 많았는데요, 이 순간만큼은 가슴이 설레었답니다.    
 

 
사실 은행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은행잎보다 떨어져 바닥이 보이지 않은 정도로 쌓인 은행잎이 더 운치 있어 보입니다. 연인들도 엄마와 함께한 아기도 폭신폭신한 노란 은행잎을 밟으며, 또 한 움큼 은행잎을 손에 쥐었다 던지며 활짝 웃는 모습들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소박한 저한당의 초가지붕과 깔끔하게 쌓은 돌담장, 그 앞에는 붉은 색채를 화사하게 발하는 단풍나무가 눈이 시리도록 곱습니다. 붉은 단풍잎마다 아름다운 가을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의 손길일까 하트에서 사랑이 전해져 오네요. 
 

 
'저한당'이라는 당호는 한자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우리 민족을 건져내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 하에 있는 상황에서 윤 의사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독립사상을 설파하며 나라를 건져내려 한 집이라는 뜻이니 온몸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저한당은 윤봉길 의사가 성장한 집으로 '한국을 건져내는 집’이라는 당호가 붙어 있지만 아담한 초가집이며, 4세부터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독립운동을 위해 윤 의사가 기거하던 곳으로 새롭게 복원한 곳입니다. 저한당엔 운봉길 의사의 초상화가 있으며 툇마루엔 햇살이 마당엔 노란 은행잎이 뒹구는 만추의 계절 윤봉길 의사의 혼과 뜻을 기려봅니다. 
 

 

 
윤봉길 생가에서 나와 태극기가 도열한 다리를 건너면 윤봉길 의사가 4세까지 성장했던 '광현당'과 농촌부흥운동을 위해 설립한 '부흥원', 그리고 연자방아 등 바스락거리는 가랑잎 소리를 들으며 산보를 즐길 수 있는 산책길도 만날 수 있습니다. 
 

 

 
'빛이 나타나는 곳'이라는 뜻의 광현당(光現堂)입니다. 광현당의 '빛날 광(光)'자는 윤 의사의 빛나는 생애를 말하는 것이며, '나타날 현(現)'자는 높고 통달했다는 뜻으로 윤 의사의 탄생을 높이 기리기 위한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마을을 부흥시킨다'라는 뜻의 부흥원입니다. 1918년에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했던 그는 이듬해에 3·1운동이 일어나자 깨달은 바 있어 식민지 노예교육을 받을 수는 없다며 자퇴하였어요. 사숙에서 한학을 배우며 애국심을 고취하던 그는 1926년에 농민계몽과 농촌부흥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윤봉길의사 생가와 광현당을 둘러보고 윤봉길의사기념관으로 왔습니다. 기념관은 2001년 개관하였으며 윤봉길 의사 유품(보물 제568호) 27종 51점을 전시하고 있으며, 3대의 매직비전을 통해 출생과 농촌부흥운동, 상하이 홍커우 공원의거 장면 등 윤 의사의 25세 일대기를 재현·전시하고 있습니다. 영상, 입체모형, 11개의 대형 그림 등을 통해 윤봉길 의사의 강인한 애국정신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윤 의사는 서당 훈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각종 서적 등을 통해 국내외 정세에 대한 식견을 넓혔는데요, 그러던 중 '공동묘지 묘표사건'을 경험하고 문명 퇴치를 위한 농민운동을 추진했지요. 야학을 비롯, 부흥원, 위친계, 월진회를 조직해 문명 퇴치와 마을의 부흥운동 등 농민운동을 추진한 것입니다.  
 

 
1942년 4월 19일, 일제는 상하이 사변 승전 축하 기념식과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 기념식인 천장정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한다고 보도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의사는 기념식이 끝나갈 무렵 어깨에 메었던 수통형 폭탄을 기념식 단상으로 던졌습니다. 주요 인사 7명이 쓰러졌고 홍커우공원의 거사는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쾌거였습니다. 
 

 

 
윤 의사는 현장에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같은 해 12월 19일 일본 삼소정공병 작업장에서 총살형으로 장렬히 순국하였습니다. 일본 가나자와시 노다산 육군 묘지에 인접한 공동묘지에 13년 간 매장된 윤 의사의 시신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3월에 발굴되었습니다. 의사의 유해는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5월 부산에 도착하여 공설운동장에서 추도식을 갖고 최초로 국민장이 거행되었으며 지금 세 분의 유해는 효창공원에 안장돼 있습니다.
 

 

 
'충의사'는 윤 의사의 영정을 모신 곳입니다.
충의사를 끝으로 윤봉길 의사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동안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윤 의사의 희생과 헌신에 숙연해집니다.

충의사
-주소: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183-5
-전화: 041-339-8233
-관람: 매일 09:00~18:00(동절기 17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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