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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가 그려져 있는 돌담풍경마을

공주 상신리 돌담풍경마을

2011.09.01(목) 잎싹(kji206@naver.com)

 

   

공주 박정자 삼거리에서 2.5km정도 공주방향으로  가다보면 공주 도예촌 이정표를 만난다. 좌회전후 상신리 입구 까지는  하신리를 지나 약 5km 정도 깊숙한 길을 들어가면  천하대장군, 천하여장군 그리고 키큰 오리솟대, 상신리 유래가 적힌 석재를 만난다. 전부 금실 좋게 새끼가 묶여 있으며 아직도 정월 대보름 전날에 장승제를 올린다. 이곳부터 상신리 마을이 시작된다.  

   

상신리명칭의 유래가 적힌 석재에 적힌 내용을 옮기면 지명은 큰 둠벙이 있어 신소(莘沼) 라고 부르며 신소골 위에 위치한 상신소로 불리다 상신리불리게 되었다. 옛날 이 마을에 당간지주와 주초, 부도대석과 탑재로 보아 큰 사찰이 있었는데  "구룡사지"로 그 흔적만을 찾을 수 있으며 아직도 마을 신앙이 면면히 지켜지며 삼불봉과 수정봉이 감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용산구곡이 흘러 산세가 무척 아름다운 마을이다.몇발자국 걸으면 우측에 화강암으로 된 선돌을 볼 수 있는데 역시 금줄이 걸려 있었다. 위쪽이 뽀족하며 높이가 약 2.5m로 석재에는 신야춘상엄원일월(莘野春狀俺原日月) 이라고 각자 되어 있는 글귀를 볼 수 있다.  유래는 알수 없으나 신앙이나 소원을 비는 의미를 두고 있음을 짐작 할 수있는 것 같았다.  

   

폐교를 활용한  문화체험장 "오도이촌"은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촌에서 " 라는 의미로 족구장, 식당, 체육관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동아리 모임 등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도록 동네에서 관리하는 곳이다. 당간지주 맞은편 이 마을의 유일한 조그마한 가게와 버스 종점을 알려 주는 시간표가 오랜 이야기를 품고 있는 풍경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당간지주는 사찰에서 행사가 있을때 비단이나 천에 부처나 보살 그림을 그린  "당" 이라는 기를 다는 깃대 역활을 하는데 설명에 의하면 한쪽이 부러진것을 최근에 복원하였으며 지주의 측면에 연꽃 무늬가 새겨진 점으로 고려 시대로  인근에 구룡사라는 절의 당간지주로 사용 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라고 적혀있었다.   

   

사실 상신리 마을 도예촌에서 해마다   봄에  열리는 도자기 축제때  좋아하는 그릇을 사기 위해  찾아 오는 곳이다. 올때 마다  상신리 돌담풍경마을을  마음으로 품고 있다가 담쟁이 덩굴 덮힌  모습이 보고 싶어 찾아 왔다. 역시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쌓은듯 하지만 정교한 돌담을 가득 덮은 초록은 때를 안탄 소담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 였다.  

   

특히 황토 흙집 지붕위에서 내려오는 담쟁이 덩굴은 초록의 향기로 한여름의 터질 듯한 더위도 이곳에서는 한풀 꺽일것 같다. 이렇게 요란했던 여름도 이제 떠날 준비를 하는것 같다.  

   

이곳 돌담풍경마을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는 곳이다. 민족 고유 전통 단전호흡을 하는 수련자들이 많이 밀집하여  정신수양을 하며 저녁에는  산에 가서 기수련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 다른 곳과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으며 개천절, 추석, 구정때는 전국에서 많은 기수련자들이 공부하며 경배를 드리기 위해 모여 든다고 한다.
  
특히 이곳은 상신리 계곡은 용과 함께 신이 숨쉬는 곳이라는 의미인 "용산구곡" 으로 유명하다. "단"의 저자인 취음 권중면 선생이 한일 합방의 비보를 듣고 상신리로 낙향하여 제자를 키우며 생전에 계곡 바위에 새긴 글씨 이다.  1곡 심용문을 시작으로 음용담, 와룡강, 유룡소, 황룡담, 신룡연, 비룡추, 운룡소, 견룡대 까지 언제 기회가 되면 암반글씨를 찾는 산행을 하고 싶다.  

   

골목길을 걷다보니 담벼락에 자리잡은 작은 생명앞에 저절로 무릎이 굻어진다. 민들레의  터질듯한 생명력은 돌담과 더불어 몇번을 피어나고 날려 보냈을지....시시각각 변해가는 세월앞에 민들레는 살짝 부는 바람에도 순응하며 쓸려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돌담 마을은 생각보다 너무 조용하다. 걷다보니  단학의 대가 봉우 권태훈선생의 묘소도 보이고 돌담을 끼고 있는 다양한 대문의 표정은 걷는 즐거움을 들려 준다. 애써 찾아나서지 않아도 터벅 터벅 걷다보면 세월이 빚은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허물어진 돌담과 나무대문에서는  소박하지만  살가운 정이 느껴진다. 걸어서 만난 곳, 걷다보니 어느새 길은 익숙하고 친숙하여 카메라에 담기는 사진 또한 깊이가 깊어진다.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대문안에는 누군가의 삶이 보인다. 물론  나 혼자의 상상과 해석으로 이뤄진 주인의 삶이지만, 소소한 일상이 얽힌 풍경은  여행자의 눈을 너그럽게 만든다.  

   

가만히 보니 돌담에도 지혜가 담겨 있었다. 무너지지 않도록 양쪽으로 이렇게 벽돌을 달아 매 두고 있었다. 새련되지 않지만 정겨움 잔뜩 묻어 나는 돌담은 빛과 어우러진  흑백 사진으로 다가 왔다.  

   

백제 도예문화의 모태가 된곳 철화분청사기의 도예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도예촌과 더불어  "돌담풍경마을" 이 또 다른 풍경으로 바뀌었다. 마을 벽화는 2010년 고려대사회봉사단 80여명이 상신리 마을 특징을 살려 그렸는데 돌담과 더불어 낭만적인 분위기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해맑게 피어난 담벽은 마치 동화책을 펼쳐보듯 커다랗게 확대된 풍경으로 다가온다. 발길 닿는 길은 즐겁고  소담스러운 얘기가 가득하며 각각의 색깔은 서로 어우러져 편안하게 다가온다.  

   

돌담은 끼고 걷는 길은 온작 야생화들이 앞다퉈 꽃망을 터트리며  가득피어 있다. 특히 매발톱은 다양한 색깔로 첩첩히 포개져 보는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마을을 빠져 나올때 쯤 막 도착한 버스에서 외출 나갔던 어르신들이  짐 한보따리 들고 내려서 걷는 뒷모습은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이자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다. 호기심으로 찾아온 마을에서 통채로 챙긴 길위의 행복은 만족감을 안고 돌아선다. 도예촌과 더불어  돌담풍경마을은 철이 바뀌는 계절, 들판의 색깔이 쇠어질 쯤  다시 온다면 또 다른 풍경으로 마음을 메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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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1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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