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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찾아본 신원사 스케치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8

2024.05.03(금) 15:27:51 | 희망굴뚝 ‘友樂’ (이메일주소:coke4856@hanmail.net
               	coke4856@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모처럼 쉬는 날 노모를 모시고 공주 신원사(新元寺)에 다녀왔습니다. 불자는 아니지만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있어서 고즈넉한 산사를 조용히 돌아보고자 떠나봤습니다.

신원사 일주문
▲ 신원사 일주문
 
신원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
▲ 신원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

오는 5월 15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기 위해 색색의 초파일 연등이 경내로 들어가는 길 양옆으로 길게 걸려 있었습니다. 연등이 걸려 있지 않을 때와 달라서 특별한 날임을 금방 알게 했습니다. 멀리 보이는 계룡산과 가까이 서 있는 나무마다 신록으로 단장하고 있어서 연등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습니다.

부도전
▲ 부도전 (浮屠殿, 승탑원)

돌탑을 지나니 계곡물 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옵니다. 계곡물이 흐르는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며 주위를 살펴보니, 부도전이 보였습니다. 부도전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부도가 모여 있는 곳을 말하는데, 신원사 부도전에 대한 안내판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언제 조성되었는지, 어떤 분들의 부도인지, 기타 상세한 정보는 얻지 못했습니다.

사천왕문
▲ 사천왕문

부도전에 서서 보면 신원사 사천왕문이 보입니다. 수십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므로 대부분의 방문자는 사천왕문에 들르지 않고 주차장으로 직행합니다. 몇몇 분만이 주차 후에 사천왕문 뒤편으로 들어와 기도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신원사 사천왕문은 1998년에 복원된 것이라고 합니다.

사천왕문 아래쪽에는 신원사 안내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신원사는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열반종의 개종조(開宗祖) 보덕화상이 창건했다고 합니다. 이후 고려 태조 23년(940)에 도선국사가 법당만 남아 있는 것을 중창하였고, 충렬왕 24년(1209)에 부암화상에 의해 중건되면서 중수를 거듭하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태조 2년(1393)에 무학대사가 중창하면서 영원전(靈源殿)을 세웠다고 합니다.고종 13년(1876)에 보련화상이 중창하였고, 고종 22년(1885)에 관찰사 심상훈이 중수하면서 어수선한 나라가 일신발전하여 신기원(新紀元)이 이룩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신원사(神院寺)를 신원사(新元寺)로 고쳐 현판을 달아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벽수선원
▲ 꽃이 진 벚나무 너머로 벽수선원이 보인다.

사천왕문을 지나니 일주문에서 사천왕문까지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많은 사람이 보였습니다. 시원한 그늘 아래 앉아 있는 방문자도 보이고, 이곳저곳 구경하는 분도 보이는데, 벚꽃이 예쁘게 피는 시기가 지난 데다 작약이니 영산홍도 만개했던 꽃들이 시들해져서 사진을 찍는 분들은 생각 같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연등 단 신원사 풍경 1
▲ 대웅전 앞 연등 단 풍경 

신원사의 가람배치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인 신원사 대웅전를 중심으로 동서로 배치돼 있습니다. 한편 초파일등에 가려 제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금당 앞뜰의 오층석탑의 중앙을 연결하는 남북의 일직선상에 사천왕문이 위치하여 일탑(一塔) 일금당식(一金堂式)의 백제가람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연등 단 신원사 풍경 2
▲ 범종루

파란색 연등이 걸린 범종루가 눈에 들어왔는데, 범종루에 관한 안내문은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천왕문 아래에서 읽은 신원사 안내문대로라면 1892년에 원융스님에 의해 종각이 신축되었고, 청동범종도 이때 새로 주조된 것일 것입니다.

대웅전
▲ 신원사 대웅전 내부에는 아미타여래를 주존으로 하여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다.

남향으로 자리 잡은 신원사 대웅전에는 기도하는 불자님들이 많았습니다. 이곳은 원담스님의 원력으로 1989년에 보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은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입니다.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 건물이며, 지붕을 받치면서도 장식을 겸하는 공포에는 연꽃을 조각해 놓고 있습니다.

산신각
▲ 독성각

그리고 대웅전 서편에 배치된 가람으로는 1892년 원융스님에 의해 신축되었다는 독성각(獨聖閣)이 자리해 있었습니다. 나반존자(那畔尊者)와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봉안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웅전과 독성각 사이에는 사찰만큼이나 이름난 수백 년 수령을 자랑하는 배롱나무가 있었습니다. 7~8월에 붉은 꽃을 보일 나무에는 이제 막 새잎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영원전
▲ 영원전

대웅전 동편에는 영원전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영원전은 일반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이라고 합니다. 명부전은 사찰에서 저승의 유명계(신불이 있는 세계)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주불(主佛)로 봉앙하고 있어서 지장전이라고도 한다고 합니다.

천수관음전
▲ 천수관음전

중악단으로 가는 길에 천수관음전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천수관음전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중생을 관찰하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시는 관세음보살이 모셔진 전각입니다.

포대화상
▲ 미륵불 포대화상 석상

천수관음전 옆으로는 조성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미륵불 포대화상이 보였습니다. 중국 송나라 때 계차(契此)라는 스님은 배가 불룩나오고 이마는 쭈그러지고 귀는 유난히 큰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등에 항상 포대를 메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넣어 다녔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무엇을 주든 받아서 자루에 넣었으며, 필요한 이에게는 무엇이 됐든 포대를 열어 꺼내 주었다고 합니다. 무량한 보시를 하고 다니는 그(포대화상)이 미륵불의 화신인 줄은 아무도 몰랐다고 합니다.

포대화상의 배를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세간의 이야기 때문인지 몰라도 미륵불 포대화상 석상의 배에는 방문자들이 던져놓고 간 동전이 종류별로 붙어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중악단 1
▲ 중악단 대문간채

중악단 2
▲ 중악단 중문간채

그리고 마침내 신원사 중악단(中嶽壇)에 도착했습니다. 중악단은 조선시대에 계룡산의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건축물이라 합니다. 계룡산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태조 3년(1394)부터라고 하며,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신원사 경내에 계룡단이라는 단을 쌓고 제사를 올린 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효종 2년(1651)에 폐지되었다가 고종 16년(1879)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세우면서 중악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중악단은 계룡산 북쪽 묘향산의 상악단(上嶽壇)과 남쪽 지리산의 하악단(下嶽壇) 사이에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하는데, 현재 상악단과 하악단은 사라졌고, 중악단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본전 안에는 계룡산 신의 신위와 영정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신원사 5층 석탑
▲ 신원사 5층 석탑

좋은 글귀
▲ 신원사에서는 부처님 말씀을 적은 기와를 곳곳에 놓아두고 있다.

중악단 전면에는 고려 초기에 건립된 오층석탑이 있는데, 상층부가 훼손되어 현재는 4층 지붕돌까지만 남아 있습니다. 1975년 12월, 중후한 느낌을 주는 이 석탑은 탑의 해체 ·복원 공사 당시 탑신의 1층 몸돌에서 사리구와 함께 개원통보, 함원통보, 황송통보, 녹색 유리로 만든 목이 긴 병 등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계룡휴게소 전경
▲ 계룡휴게소 전경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기 좋은 공주 신원사입니다. 꽃구경하기 좋은 계절은 비껴갔지만, 싱그러운 녹음이 짙어가는 5월에도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하는 곳이어서 시간 여유가 있으실 때 걸음 해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신원사
충남 당진시 순성면 버들길 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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