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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연산의 명소 돈암서원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리 74

2024.01.01(월) 04:05:57 | 춘당 (이메일주소:yosaebi45@daum.net
               	yosaebi45@daum.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보고도 먹지 않으면 늙게 된다'는 대추를 특산물로 갖고 있는 연산(連山)은
  내륙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논산시에서도 계룡산과 대둔산이 사방을 둘러싼 지역이라
  기후적으로 겨울에도 따뜻하고 바람이 적어 추위에 약한 대추나무와 감나무가 잘 자라는 고장이다.
  매년 추수가 끝나면 말랑하게 숙성된 곶감과 잘 말린 대추를 홍보하는 곶감축제가 열리곤 하는데
  특산물인 대추를 널리 알리고자 대추나무를 형상화한 아치를 마을 입구에 세워
  오가는 사람들에게 연산 고장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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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추꽃이 피는 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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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맛이 뛰어 난 연산 대추〉

   따뜻한 고장답게 사람들은 온후하고 따라서 인심도 후덕하며
   화목한 이웃들끼리 서로 음식과 정을 나누다 보니
   자연히 손맛이 있는 음식점도 생겨났고
   그 전통을 자손 대대로 이어 가는 맛집도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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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에 걸쳐 성업중인 '할머니 순대국집'〉
 
   이 고장에서 후학들을 길러낸 사계 김장생 선생의 영향으로
   마을 사람들은 예의 바르고 친절한 심성을 갖게 되었고
   그 착하고 후덕한 인심은
   이 곳에서 하룻밤 쉬어 갈 수 있는 숙박 시설을 꾸며
   일반적인 모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전통 생활 체험이 가능한
   특이한 논산 한옥마을을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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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 했던 고대광실 대갓집에서
   하루 밤 쯤 양반과 부자 노릇을 해보는 것도 특이한 경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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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산 한옥마을〉

   한옥마을과 불과 150m쯤 이웃해 있는 돈암서원은
   2019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사적 제 383호로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34년에 세운 기호유학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서원은 예학의 종장인 사계 김장생 선생의 사후에 그의 제자들과 유림들이 창건하였으며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예학의 산실이 되었다.
   애초에는 현재 서원의 자리에서 서북쪽으로 약 1.5km 떨어진
   논산시 연산면 하임리 숲말 산기슭에 있었는데 홍수로 재해가 들자
   1880년(고종 17) 현재의 고정산 줄기가 이어지는 산턱으로 옮겨졌다.
   동쪽을 향한 서원 앞쪽에는 들판을 가로질러 연산천이 흐르고
   뒤로는 고정산 줄기가 배산을 형성하며 전면 좌측에는 계룡산이 있고
   우측에는 대둔산을 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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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향을 하고 있는 홍살문〉

   홍살문을 거쳐 서원의 외곽 건물인 산앙루(山仰樓)에 오르면 서원 전체가 한 눈에 잡힌다.
   건물의 배치는 전학후묘식(前學後廟式)으로 배치하였으나
   전면에 위치한 강당(응도당)이 중심축에 놓여있지 않고 약간 서쪽으로 직각 배치되어 있다.
   산앙루는 서원의 문루인데 편액의 산앙(山仰)은 시경에 나오는 문구로서
   '우러러 본다'는 뜻을 갖고 있으며 현재의 건물은 2006년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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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앙루(山仰樓)〉

   서원을 출입하는 입덕문(入德門)은 외삼문으로도 불리며 '入德'은 '덕에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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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덕문(入德門)〉

    대문 옆에 세워진 '연산돈암서원지비(連山돈巖書院之碑)' 옆에는 
   『돈암서원이건묘정비』(돈巖書院移建廟庭碑)가 따로 서있어
    서원이 옮기게 된 사유들을 상세하게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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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양성당'과 '연산현돈암서원비기'가 첫눈에 들어온다.
   양성당의 좌우에는 글을 배우는 유생들이 기숙사로 사용하던  
   거경재와 정의재가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그 사이의 공간은 안마당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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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성당과 동재와 서재인 거경재, 정의재〉

    돈암서원의 동재인 거경재(居敬齋)의 편액은
    성리학의 개념중 하나인 거경궁리(居敬窮理)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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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재인 거경재(居敬齋)〉

    동재 앞의 서재인 정의재(精義齋) 편액은 주역의 계사하전(繫辭下傳)에 
    '의리를 정밀하게 하여 입신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쓰임을 다 하게 된다'는 뜻을 담았다.
    (精義入神 以致用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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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인 정의재(精義齋)〉

   양성당(養性堂)은 돈암서원의 강당으로
   김장생이 스스로 늙더라도 게으르지 않도록 자신을 경계하고자
   '오랫동안 본성을 기른다'는 의미를 부여한 당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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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성당 앞에 세워진 '연산현돈암서원비기(連山縣돈巖書院碑記)'는
   사계 김장생 선생의 행적과 서원을 세우게 된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다.
   「사계(沙溪) 문원공(文元公) 김선생의 숭정(崇禎) 신미년(1631. 인조 9) 8월에
   사계(沙溪)에서 돌아 가셨는데 이미 장사 지내고 나서
   문인 제자들이 선생을 사모하는 마음을 붙일 곳이 없으므로 
   즉시 사계 옛집의 왼쪽에 사우(祠宇)를 건립하여 3년 만인 갑술년(1634)에 낙성하고
   5월 정해일에 의례(義禮)와 같이 신판(神板)을 봉안 배향하였다...」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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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삼문(內三門)은 숭례사에서 제향을 지내기 위해 드나드는 문으로
  사당 앞의 어칸과 양 협칸을 별도로 하나씩 세우고 문과 문 사이에는 담장이 쳐져 있다.
  담장에는 지부해함(地負海涵), 박문약래(博文約禮), 서일화풍(瑞日和風) 등
  김장생의 예학과 그의 후손들의 예학 정신을 잘 보여주는 12개의 글자를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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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담〉

   숭례사(崇禮祠)는 서원의 중심부에서 맨 뒷쪽에 있는 사당 건물이다.
   '예를 숭상하다'라는 의미의 현판이 걸려있는 이 사당은 군자가 덕을 닦고 학문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사당 내부에는 주향(主享)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선생과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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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례사(崇禮祠)〉

    숭례사 오른쪽에 판자문을 한 건물은 장판각(藏板閣)으로   
    김장생과 김계휘(부친), 김집(아들) 선생들의 책판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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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판각과 정희당 사이에 있는 300년된 향나무>

   정회당(靜會堂)은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金繼輝)가 낙향한 후 연산현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정회(靜會)란 고요히 모인다는 의미로 훗날 돈암서원을 건립하는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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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회당(靜會堂)〉

   돈암서원의 큰 강당인 응도당(凝道堂)은 돈암서원 강학 활동의 중심으로
   옛 건물의 제도인 하옥도(廈屋圖)를 본받아 지은 것으로 유명하며
   건축학적 가치가 있어 보물 제156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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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도당은 유생들이 공부하던 장수강학(藏修講學)의 성격을 지닌 강당이다.
   고종 17년(1880)에 서원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을 때 옛 터에 남아 있었던 것을 1971년에 이전하였다.

   당시 양성당이 이미 강학의 기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숲말에 있던 서원의 위치와는 다르게 사당과 직각으로 배치하였다.

   응도당은 예를 실천하는 건축제도의 모델로 제시된 건축 양식이기 때문에
   돈암서원의 건물배치와 규모는 사계 김장생 선생이
   『의례』와 『주자대전』에서 고증하여 강경 황산서원(현 죽림서원)을
   창건했던 법도를 이어 받았다고 한다.

   처마의 암막새기와의 명문으로 보아 인조 11년(1633)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서원의 규모나 구조적 측면으로 보아 한국 서원의 대표 서원 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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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도당(凝道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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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나무〉

    전사청(典祀廳)은 향사에 쓰이는 제기를 보관하고 제수를 준비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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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사청(典祀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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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회당(慶會堂)은 현재 관리 사무소로 사용하는 건물인데 마루에 안내 책자 등을 비치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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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회당(慶會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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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돌아보아도 한 시간 남짓이면 서원 경내를 찬찬히 살펴 볼 수 있는 돈암서원은
    성리학의 대가 김장생의 유지를 받드는 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입시 위주의 학문이 아니라 바른 생활과 학구적인 자세를 가르치는
    전인교육(全人敎育)의 역사가 서려있는 돈암서원을 물러 나오며
    새삼 교육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돈암서원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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