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0년대 공주시 옥룡동 (사진 공주시문화도시센터)
사료에 따르면 옥룡동 일원은 백제시대에는 사람이 살지 않던 땅이며, 일제강점기까지도 민가는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대추골 역시 기록물과 구전을 종합해 보면, 경작지를 제외하면 1970년대 이전까지는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이었던 듯합니다.
▲ 2023년 공주시 옥룡동 대추골 일원_ 1(사진 채수명 옥룡동 문화체육분과 위원장)
▲ 2023년 공주시 옥룡동 대추골 일원_ 2
▲ 공주시 옥룡동 이동백 소리길은 옥룡 2통에서 옥룡 20통을 연결하고 있다.
▲ 근세 5대 명창의 1명으로 손꼽히는 이동백 판소리 명창이 살던 집터는 아직 대추골에 남아 있다.
▲ 공주시 옥룡동 대추골 '이동백 소리길'에 조성된 마을 주차장
우리 일행과 김유주 분과장은 2021년 준공한 '이동백 소리길' 주차장에서 집합해서 마을 고지대에서 저지대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이동백 소리길'은 공주시 옥룡동 대추골 중심을 가로지르는 도시계획도로입니다. 공주시는 왕복 2차도로를 건설하면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 '이동백(李東伯, 1867년~1950년)'이 옥룡동 대추골에 거주했던 사실에 따라 신규 도로명을 '이동백 소리길'로 변경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이동백 소리길 도로변에는 대추골에서 가장 넓은 주차장이 조성돼 있습니다.
▲ 2018년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기 전의 대추골 2길과 3길의 마을 풍경
▲ 소류지가 있던 자리는 공주시 옥룡동 대추골에서 가장 고지대에 속한다.
▲ 2023년 공주시 옥룡동 대추골에는 여전히 고지대에 자리한 주택이 많다.
▲ 2023년, 공주시 옥룡동 대추골 고지대에 자리한 주택들
▲ 2022년부터 대추골을 지나는 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 김창룡 판소리 명창의 유허지와 양계장이 있던 공주시 옥룡동 대추골 일원
▲ 공주시 옥룡동 주민자치회 도시재생분과 김유주 위원장이 대추골 일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2018년, 공주시 옥룡동 대추골 정자 맞은편에는 구멍가게가 남아 있었다.
▲ 중고제 판소리 명창 김창룡이 살던 집터
▲ 윤씨 아저씨가 운영하던 양계장이 있던 자리
그 맞은편 집에는 일식집을 운영하던 분이 38년째 살고 있다는데, 그전에는 큰 양계장이 들어서 있었다고 합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윤씨 아저씨가 운영하던 양계장에서 나오는 일명 '싸롱'이라 불리던 곤달걀은 마을 주민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김유주 위원장은 윤씨 아저씨를 고마운 분으로 기억하며, 세종시로 이사하셨다는 소식만 듣고 있노라 전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까지 공주산성시장에서 팔리던 곤달걀이 화두에 오른 후, 산성시장에서 품삯을 받고 손님들 짐을 옮겨 주던 명물 아저씨가 살았다는 대추골경로당 인근 주택도 둘러보았습니다.
▲ 대추골 최고령자 어르신과 환담하는 김유주 위원장과 팀원들
▲ 도랑물이 흐르던 골목길
이동백 소리길 주차장 쪽으로 내려와 잠시 평상에 앉아 팀원들이 준비해 온 하미과 멜론과 찐 밤을 먹으며 휴식을 취할 때였습니다. " 방금 전 나한테 전화한 사람한테 전화 좀 걸어줘 봐유." S.O.S를 요청하며 어르신 한 분이 다가오셨는데, 김유주 위원장은 동네에서 제일 연장자라며 팀원들에게 소개한 뒤 어르신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동네 어르신께서는 대전에서 대추골로 이사를 오셨다는데, 남편을 일찍 저세상으로 보내고 홀로 5남매를 식당 일로 키우며 살았노라 말씀하십니다. 너 나 없이 힘들었던 시절을 용케 견뎌내신 어르신은 전화 용건을 끝내시고, 주름 가득한 양손을 지팡이 삼아 굽은 허리를 부여잡아 가며 총총히 자리를 뜨셨습니다.
잠시 후에는 낯선 이들의 등장을 유심히 살피던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일행을 기다리다 "어떻게들 오셨어요?"라며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여기 오래 사신 분과 동네 구경하러 왔어요." 하니, 자신은 동네를 흐르던 도랑이 복개된 후에 이사해 왔으며, 대추골에 온 지는 30년 정도 됐노라 하셨습니다. 동네 아주머니 말씀에 김유주 위원장은 도랑물이 흐르던 골목을 가리키며, "집집마다 도랑을 건널 수 있는 작은 다리들이 놓여 있었어요."라고 추억담을 들려주었습니다. 김유주 위원장의 이야기를 듣다 난데없이 '똘캉(도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새삼 시대가 변하면서 마을의 옛 모습뿐만 아니라 사용하던 말도 같이 잊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공주영명중학교 운동장 옆으로 난 대추골 도로 풍경
도랑물이 흐르던 곳을 지나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김유주 위원장이 공주영명중학교 언덕에서 비료포대를 대고 미끄럼 타고 팽이치던 장소가 나타났습니다. 김 위원장의 진한 추억만 남아 있는 이곳도 현재는 쌈지주차장이 조성돼 있었습니다.
그 맞은편 집들은 도로보다 낮은 위치에 대문이 달린 댁이 많았습니다. 도랑을 복개하면서 그리된 것인지, 터를 몇십 미터씩 높여 다지고 건물을 지었기 때문인지, 알아볼 여지가 있습니다.
▲ 대추골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동네 슈퍼
여주가 대롱대롱 매달린 집, 다래 열매가 익어가는 댁, 포도 덩굴 관리가 잘 된 주택을 지나 대추골 초입에 있는 (구멍)가게에 다다랐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 대추골에 들어선 곳이라고 합니다. 간판이 없어 상호조차 모르지만, 현재는 대추골에 유일하게 남은 가게입니다.
공주시 옥룡동 대추골은 지리적으로 도심에서 가까우면서도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민들은 도시재생사업이 끝나고 주거환경이 개선되면서 빈집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살기 좋아졌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행여 시장이나 마트에 나갈 형편이 안 될 때는 콩나물, 두부, 청국장, 소금, 담배, 소소한 생필품 등을 파는 이 가게의 존재가 얼마나 고마울까요? IMF니, 코로나 시국이니 하는 큰 고비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쇼핑몰이 날로 확대되고, 몇 걸음만 떼면 편의점이 보이는 요즘 세상에 용케 잘도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간전 뒷산에서 조망한 공주 원도심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