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대산 영탑리에서
대전에서 서산 대산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대흥터널을 지납니다. 하늘은 어찌 그리도 파랗던지 가도 가도 하염없이 펼쳐질 것만 같습니다. 논에는 내 팔 길이만큼 자란 벼들의 푸른 기운이 한창입니다.
▲ 벼들이 한창 여물고 있습니다.
엄마가 10년 넘게 계셨던 곳, 서산 대산 영탑리. 일주일이 멀다하고 다니기도 했고 일이 바쁘면 보름 만에 찾아가 못 다한 ‘재롱’을 부리던 곳. 대산 영탑리가 가까워지고 저 산꼭대기 공군기지가 눈에 선명해지니 가슴이 뜁니다. 엄마는 안 계시는데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엄마~!’ 여전히 엄마를 불러봅니다. 문이 열리면 바로 ‘두부’가 먼저 왈왈 아는 체를 하는 중에 내 이름을 부르며 활짝 웃었던 엄마가 계시지 않습니다.
▲ 영탑리
▲ 영탑리
엄마가 지난 3월부터 한 달을 넘게 누워 계시는 동안 잠시 짬을 내어 걸었던 동네, 영탑리. 봄바람에 여린 쑥이 해를 받고 있던 들판을 걸어갈 땐 추워서 겉옷 하나를 더 걸치기도 했습니다. 걷는 동안 통증으로 시달리는 엄마 앞에서 참았던 눈물이 흐르다 멈추고 다시 흘렀습니다.
▲ 영탑리
▲ 영탑리
노란 듯 흰 나비 한 마리가 언제부터 나를 따라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순간, 푸른 하늘 저 먼 곳 그 어디쯤에서 엄마가 나를 잠깐 만나러 왔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사진에 담으려고 하면 어딘가로 사라지는 나비를 그냥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아무도 모르게 엄마를 만난 것 같은 소중한 느낌을 그저 내 마음에 잘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나비가 보였던 곳은 아마도 엄마가 해마다 쑥을 캐던 논둑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 영탑리
▲ 영탑리, 장녹(자리공)열매
걸음 소리를 눈치챈 청개구리가 재빨리 논물로 들어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게 합니다. 햇빛에 매끄럽게 반짝이는 장녹(자리공)은 어느새 작은 포도송이 같은 검붉은 열매가 조롱조롱 달렸습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소꿉장난할 때는 이름도 잘 몰랐던 열매. 손톱에 자줏빛 물을 들이다가 옷에 얼룩이 지기도 했는데 이후에는 엄마가 봉숭아꽃으로 손톱에 물을 들여 주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어리고 엄마는 참 젊은 시절이었겠지요.
▲ 영탑리
▲ 영탑리
▲ 영탑리
▲ 영탑리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영탑리의 봄. 이제 늦여름을 지나 가을입니다. 추석명절이 다가오면서 그리움은 더 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