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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시원한 길이 마주하는 개태사

2022.04.15(금) 22:50:50 | 플러그인영이 (이메일주소:proyoung2@naver.com
               	proyoung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연습]

당신, 생각보다

당신은 참 많이 가진 사람입니다

그것을 알아주는 것 또한

오로지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나를 사랑하는 연습ㆍ정영욱-  

자연은 우리에게 모두 시인이 되게 합니다.


 

시원한길이마주하는개태사 1


개태사는
1081년 전 고려 태조 왕건이 왕찰로 창건하신 호국종찰입니다.

개태사에 대웅전 중창불사 원력을 세웠습니다.


 

시원한길이마주하는개태사 2

 

1988년 개태사와 인연을 맺은 20년의 세월을 맞이하여 불사에 동참해 주시는 신도들을 위해

기와 한자, 주춧돌 한점, 대들보, 불단 등 대웅전 불사에서 시주하신 한 분, 한 분의 정성 담아 대웅전 중창불사를 부처님의 원력으로 이루고자 공사 중입니다.


 

시원한길이마주하는개태사 3

 

개태사의 유래

왕건이 손수 지은 소문에 부처님의 도움에 보답하고 산령이 도와주심에 수응하기 위해 관청에서 명하여 새 연궁을 건립했는데 산이름을 청호라고 하고 절 이름을 개태사라 했다 고 개태사 창건동기와 배경을 소상히 밝혔다. 개태사에는 왕건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어 진전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기일마다 제를 올렸다고 한다.


 

시원한길이마주하는개태사 4 

왕건의 옷 한 벌과 옥대가 보관돼 있었으며, 국가 대사가 있을 때마다 어진에 나아가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실제 공민왕은 강화도로 천도하려는 마음으로 개태사는 개경과 거리가 멀어 왕실의 관심이 멀어지고, 우왕때에는 왜구가 침입, 방화 약탈을 일삼아 절의 살림이 어려워진데다 조선 초 숭유억불 책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조선 세종 때 불교 진흥책으로 잠깐의 중흥의 기툴을 다지는 듯 했으나, 그 뒤 폐허가 되고 말았다.

시원한길이마주하는개태사 5


그러나 서기
2003년부터 2011년까지 풍전등화 같은 쟁송을 겪고 2008년 명실부상한 대한불교 조계종 호국종찰 개태사로서 변모를 일신하여 2013515일 어진전을 신축 완공하여 태조 왕건 어진을 모시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원한길이마주하는개태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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