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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금강가에 자리잡은 죽림서원과 사계 김장생이 세운 임리정 충남 논산 여행

2022.04.14(목) 22:53:09 | 마패 (이메일주소:faron@hanmail.net
               	faron@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강경젓갈로 유명한 강경포구가 내려다 보이는 강변에 자리잡은 죽림서원은 1626년(인조 4)에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기호학파의 조종인 이이를 비롯하여 성혼과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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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서원에 모셔진 이이(1536∼1584)는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나서 어머니인 신사임당으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며 과거에 아홉 번의 장원급제를 하였고 이황과 더불어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원리를 중시한 영남학파의 이황과는 다르게 경험을 중시하는 기호학파의 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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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서원에 이이와 함께 배향된 성혼(1535∼1598)은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는데 이이와 학문을 교류하였으며 많은 벼슬자리에 추대되었으나 거절하다가 이이의 권유로 관직생활을 시작해서 공조좌랑, 지평, 사헌부장령, 사헌부집의, 이조참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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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서원은 처음 세워질 때는 옛지명을 따라서 황산사 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나 1665년(현종 6)에 ‘죽림’이라는 사액 현판이 내려지면서 죽림서원으로 불리게 되엇고 조광조와 이황을 추가배향 하였고 1695년(숙종 21) 송시열을 추가 배향하여 6인의 선현을 배향하고 지방교육의 한축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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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 죽림서원이 훼철되면서 유허지에 제단을 마련하고 향사를 계속하여 오다가 1910년 국권상실과 함께 중단되었다가 1946년 지방유림이 옛 제단을 복원하여 죽림사를 세우고 1984년5월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5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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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서원 경내 내삼문 안쪽에는 이이 성혼 김장생 조광조 이황 송시열의 위패를 모신 죽림사가 맞배지붕을 올린 기와목조건축물로 전면 3칸 측면 1칸 으로 지어진 건물과 정기비각이 자리잡고 있고 외삼문 안에는 좌우에 동재와 서재 등 두채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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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서원 오른편 논산 강경뜰로 흘러드는 금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자리잡은 임리정은 서인의 장령이자 예학의 태두로 이이의 뒤를 이어서 기호유학의 초석을 세운 사계 김장생이 자신의 학문을 연마하고 후손들에게 예학을 기반으로 하는 기호유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정자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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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은 웅진강, 백마강, 고성진강 이라고도 불리는데 비단같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지은 정자는 처음에는 황산정으로 불리었으나 “깊은 못가에 서 있는 것과 같이, 얇은 얼음장을 밟는 것과 같이, 자기의 처신과 행동에 항상 신중을 기하라”라는 [시경]의 구절을 따서 임리정이라 이름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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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김장생(1548∼1631)이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모시기 위해 황산서원(죽림서원)을 세운 후 조선 인조 4년(1626) 아름다운 금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세운 임리정은 팔작지붕을 올린 기와 목조건축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어진 건물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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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리정 앞에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자리에 세워져 있는 임리정기비는 김상현이 찬하고, 김영목이 썼는데 비문에는 사계 김장생의 강학처에 정자를 세우고, 죽림서원을 창건하고 추배하고 훼철되기까지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고 임리정기비를 세우기까지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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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리정기비에는 “슬프도다. 정자는 한 도리의 작은 규모이나 우주 변화의 묘함을 거두어들이고 음양의 커지고 작아지는 기미를 포함하고 있으니 험준한 바위를 끌어안고 큰 물결과 급한 소용돌이를 가슴에 안으니 앞으로 오래도록 이지러지지 않으며 장차 더불어 그 수명을 함께 할 것이다” 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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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김장생은 송익필로부터 사서와 근사록 등 학문을 배우고 20세 무렵에 율곡 이이에게 이기설 등의 학문을 배워 1578년(선조 11) 벼슬길에 나섰으나 동인 서인 남인 북인으로 나뉘어 당파싸움이 치열했고 이괄의 난과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으로 혼란스런 시기여서 사상계에서는 기존의 주자학적 정통주의가 훨씬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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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학에 정통한 사계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이기설을 예론에서 이론적 배경으로 삼아 예학의 태두가 되었으며 학문을 아들 김집에게 이어받게 하여 예학파의 주류를 형성하게 하였으며 죽림서원(황산서원), 연산 돈암서원을 비롯하여 안성 도기서원 등에 제향 되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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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김장생의 저서로는 상례비요, 가례집람, 전례문답 , 의례문답 등 예에 관한 것과 근사록석의, 경서변의 와 시문집을 모은 사계선생전서가 전해 오고 있고 김장생의 아들 김집과 우암 송시열을 비롯하여, 송준길, 이유태, 강석기, 이시직, 최명길, 이덕수, 최명룡 등을 중심으로 기호학파가 크게 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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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 여행
죽림서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5호
임리정-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7호
충남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9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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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서원이 자리잡은 금강가 강경수상레져 내려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커다란 배형태의 전시관인 강경젓갈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는데 법정 휴일과 월요일은 휴관이며,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관을 하고, 점심시간은 12시부터 13시30분까지 이고 일요일은 오후 1시부터 개관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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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젓갈전시관은 강경의 특산물인 젓갈을 주제로 1층 함께 가자 강경 문화의 공간, 2층 젓갈과의 만남 흐름의 공간, 3층 젓갈을 배우다 배움의 공간, 4층 강경과 하나 되다 소통의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강경 젓갈의 어제와 오늘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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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젓갈전시관
충남 논산시 강경읍 금백로 45
041-730-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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