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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고려의 마지막 대학자 '목은 이색'

예산 목은 선생 영당 (누산 영당)

2021.03.23(화) 20:30:26 | 안개비 (이메일주소:hae041@naver.com
               	hae041@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국사 시험 중 빠지지 않았던 문제로 '삼은(三隱)'이 생각납니다.
고려 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를 이르는 말인데, 이 3인의 대학자들 호에는 '은(隱)'자가 들어간다고 해서 '삼은'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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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은 선생 영당(예산)

그 삼은 중에 '목은 이색(牧隱 李穡)' 선생을 기리는 영당이 예산에 있으니, 그곳을 살며시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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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은 선생 영당

정보에 나와 있는 주소로 찾질 못하여, 마을 주민께 물어보고 나서야 정확한 위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찾아온 '목은 선생 영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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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충문(솟을삼문)

영당의 규모나 관리는 대학자이자 삼은 중 1인이라는 별호를 가질 만큼의 기대치에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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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치된 해설판(연혁)

어쩌면 마을의 한 구성으로 숨 쉬고 생활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형식적이지 않고 친근하며 편하게 다가설 수 있다는 생각에 저는 좋았는데,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아쉽다면, 기존에 세워졌던 시설물이 방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의 관심이면 정리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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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은 선생 영당 연혁

영당 입구에 선생의 연혁이 뒷면에 새겨진 작은 비가 있습니다.
부족한 한문 실력이 느껴지는 순간이긴 하면서도,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이 있다면, 옆에 작은 해설판이 함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에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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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충문

솟을 삼문에 쓰인 '문충문(文忠門)'은 대학자(文)이자 나라를 위한 정치가(忠)로써 일생을 바쳤던 선생의 뜻을 기리는 의미일까요? 
이 영당은 목은 이색(1328~1396)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지었으며, 젊은 시절 원나라를 오가며 성리학을 연구하고 그 기초를 확립하였습니다.
1352년(공민왕 1년)에 세금제도 개혁, 국방계획, 교육 장려, 불교 억제 등 여러 정책에 대해 건의를 올렸으며, 1389년(공양왕 1년)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즈음에 유배되기도 하였습니다.
후에 이성계가 그를 조정으로 불러들였지만 이를 거절하고 여강으로 가던 도중에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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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은 선생 영당

닫혀 있던 문을 살며시 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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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당 전경

영당 앞으로 노거수 2그루가 눈에 들어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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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수 이력

5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향나무이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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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나무

조선왕조와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격동기를 이 노거수는 기억하겠지요. 그 어깨가 많이도 닳아 있음에 서글픔이 묻어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기억을 닦을 수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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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은 선생 영당

창호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고 때가 묻어 있네요. 그 또한 세월의 흔적이겠지요. 우리도 벌써 잊어가는 목은 선생을 우리 후대들은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해집니다. 그렇게 역사는 기록으로 남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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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은 선생 영당

우리는 고려 말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목은 이색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한 신하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곧은 절개를 기억해야겠습니다.
이런 충절과 곧은 절개를 지킨 많은 역사 인물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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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은 선생 영당

저 영당 안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하지만 굳게 닫혀 있던 그 안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호위하듯 서있는 저 두 그루 향나무의 푸르름만이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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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산영당본 (보물 제1215-3호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사진)

아쉬움에 목은 선생의 모습을 찾아보았습니다.
목은 선생 초상은 목은영당본 2점(서울 종로구), 영모영당본 1점(국립부여박물관), 대전영당본 1점(대전시립박물관), 그리고 이곳 예산의 누산영당본 1점, 이렇게 4본 5점이 대표적으로 남아있는데, 원본은 전하지 않고, 모두 원본을 보고 옮겨 그린 초상이랍니다. 
이번에 찾은 목은 선생 영당의 초상을 누산영당본이라 하는데, 1600년 목은 이색의 8대손에 의해 예산 덕산 누산 2리(현 삽교면 이리)에 영당을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하였다고 하여 누산 영당(樓山 影堂)이라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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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은 선생 영당

활짝 열리지 않고 닫혀 있는 저 솟을 삼문은 언제가 되어야 열릴까요? 그리고, 목은 선생이 바라보았던 세상은 어떠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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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은 선생 영당

목은 선생의 정신이 푸르른 향나무와 함께 오래도록 은은한 향으로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목은 선생 영당
 -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이리 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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