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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을 위한 헌사

박범신 소설 <소금>의 배경이 된 강경 옥녀봉의 ‘소금집’에서

2021.02.27(토) 22:44:42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강경이 낳은 작가, 박범신. 옥녀봉에서 만난 소금집은 작가의 작품 <소금>의 배경이다. 책은 2013년 봄에 처음 나왔다. <소금>은 그 이전 년도에 신문매체의 온라인으로 연재되었기에 이따금씩 눈에 띌 때면 읽은 기억도 난다. 대강 알 것도 같은 그러나 확실하게 잘 모르는 장편소설<소금>을 강경 ‘소금집’에서 짭짤하게 곱씹게 될 줄은 몰랐다. 소금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작가 소개와 <소금>에 대한 ‘작가의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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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의 작가, 박범신
 
“... 나는 여전히 묻고 싶다. 이 거대한 소비문명을 가로지르면서, 그 소비를 위한 과실을 야수적인 노동력으로 따온 ‘아버지’들은 지금 어디에서 부랑하고 있는가. (중략) 소비의 ’단맛‘을 허겁지겁 쫓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 늙어가는 아버지들의 돌아누운 굽은 등을 한 번이라도 융숭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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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이야기 <소금>의 배경이 된 소금집
  
“이것 저것 나누지 않고 하나로 합쳐 도저하게 흐르는 것이야 말로 강물의 일이 아니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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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가 날카로워서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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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집은 텅비어 있다 
  
소금집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뒷마무리를 급하게 했는지 각진 모서리마다 날이 서 있다. 어린 아이들과 같이 온다면 안전에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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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집의 배롱나무
  
작품에 나오는 배롱나무는 옥녀봉 소금집의 배롱나무일까. 아니면 상징적으로 배롱나무를 이곳에 심어놓은 것일까. 확인할 수 없지만 배롱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은 다시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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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집에서
  
“배롱나무는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서 꽃은 물론 그 줄기도 품격이 남달라 예로부터 선비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내가 다녀본 웬만한 고택의 뜰엔 꼭 배롱나무가 한 그루쯤 서 있었다. 이를테면 소론파의 거두로서 수많은 관직을 제수 받았으나 오탁(汚濁)의 세월을 한 사람 뜻으로 뒤집을 수 없다는 걸 알고 한 번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윤증(尹拯) 선생의 고택(古宅) 뜰 앞 연못의 작은 섬에도 배롱나무가 있었다. 벼슬길의 유혹이 있을 때마다 명재선생은 아마도 배롱나무가 껍질을 벗듯이 울분의 껍데기를 벗겨내며 자기 각성의 길을 옹골차게 도모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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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집
 
가장 무더운 여름, 백일 동안 피어 있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도 하는 배롱나무꽃은 화려한 장미와 격이 다르다. 매끈하고 단단한 가지는 여름 내내 하늘하늘한 꽃들을 떠받치고 있다. 옥녀봉에서 <소금>을 읽는다면 그 느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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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집 입구
  
“옥녀봉에 있는 선명우의 ‘소금집’에서 내려다보는 금강은 정말 비단을 깔아놓은 듯 매끄럽고 유장했다. 계룡산의 허리짬을 파고 돌다가 공주 부여의 옛 꿈을 쓰다듬고 내려오는 강물이었다. 흐르기 때문에 강인 것인지, 강이기 때문에 흐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강물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면 멀리 계룡산의 연접한 줄기줄기도 머물지 않고 마냥 흐르고 흘렀다. 흐르고 머무는 것이 자연이려니와, 흐르고 머무는 것이 곧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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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시고 쓰고 짠 인생의 맛
 
영화 <은교>를 통해 잘 알려진 작가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즈음 당시 최고의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죽음보다 깊은 잠>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가 될 때마다 나는 왠지 통속적일 거라고 지레짐작해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은 작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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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소금을 만들면서 정작 자기 몸속의 소금은 챙기지 못해 죽어가던 아버지. 작품은 어머니 이야기와 달리 우리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읽힌다. 오늘도 자기 몸속의 소금기가 빠져나가는 줄도 모른 채 많은 익명의 아버지들이 ‘달고 시고 쓰고 짠’ 모습으로 힘겹게 일상을 헤쳐나가고 있다.
 
옥녀봉의 소금집에서 가파르게 내려가는 좁은 길에는 저 멀리 황산대교가 보이고 강경읍이 바로 눈앞에 있다. 겨울에 덮었던 담요가 담장 곁의 건조대 위에 널려 있고 텃밭엔 금방이라도 아지랑이가 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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