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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항아리 모양 가로림만의 섬들

충청이 품은 섬 이야기⑬서산 고파도, 웅도, 우도, 분점도

2020.05.24(일) 17:48:15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가로림만 전경

▲ 가로림만 전경



육지 안 깊숙이 들어온 바다
70년대 충남-인천 잇는 뱃길
은하호에 젊은이들 꿈 실어
삽교호 준공은 육로교통 혁명

 
가로림만은 연안 면적은 1만5985㏊, 전체 해안선 길이는 162㎞이며, 개펄만 8000㏊에 이른다. 충남 서산시에 있는 가로림만은 서해안에서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호리병 모양의 만이다. 태안군 이원면 만대와 서산시 대산읍 벌말을 마주하여 가로림만은 항아리처럼 생긴 커다란 바다이다. 4개의 섬은 서산시 팔봉면에 속한 고파도, 대산읍의 웅도, 지곡면에 소속된 우도와 분점도가 있다. 가로림만은 육지 안에 깊숙이 들어온 바다이지만 꼭 호수 같다.

가로림만을 대표하는 섬은 고파도이다. 고파도는 구도 포구에서 여객선으로, 우도와 분점도는 서산의 끄트머리인 벌말포구에서 도선을 이용하면 된다. 웅도는 물이 빠지면 하루에 두 번 모세의 기적이 나타나 노둣길로 건너간다.

현재 서산시 팔봉면 호리 구도 항에서 가로림만의 중심에 있는 고파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있다. 구도 항은 1930년대부터 인천 간 정기여객선이 운항된, 역사가 매우 깊은 항로이다.

구도 항은 인천과 서울로 연결하는 관문 역할을 했던 곳이다. 서산과 태안읍 곳곳을 연결하고, 멀리 인천으로 여객선이 출항하여 항상 분주한 곳이었다. 80년 전에 인천과 서울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은 7시간 정도 걸리는 느림보 여객선 칠복호였다. 그 뒤 네 시간에 주파하는 은하호를 이용하면서 이곳 주민들이 느꼈던 흥분은 대단하였다고 한다. 인천을 향해 가는 뱃길은 시골에 싫증을 느낀 당시 젊은이들의 꿈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인천과 충남 서해안 뱃길은 7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까지만 해도 서산·태안에서 시외버스나 기차로 서울을 가려면 하루를 잡아먹을 정도였다. 50-60년대에 육로 교통의 오지라는 불명예를 안고 사는 이곳 주민들은 뱃길을 이용해 인천과 수도권을 왕래했다.

태안군 쇠섬이 고향인 전 안상수 인천시장도 초등학교 4학년 때 뱃길을 따라 인천으로 유학을 갔다. 당시 인천의 중·고등학교 재학생들 중에도 배를 타고 유학 온 서산, 태안, 당진 학생이 많았다. 이를 두고 영어선생은 서산보이, 태안보이, 당진보이 등으로 별명을 붙여 불렀다고 한다. 1979년 10월 26일에는 충남 태안반도와 내륙인 아산시 인주면을 잇는 삽교방조제가 준공되면서 서울~당진간의 육로거리가 40㎞나 단축되었다.

이전까지 당진, 서산, 태안 등 3개 군의 주민들은 멀리 서울과 내륙으로 나들이를 하려면, 당진~합덕~신례원까지 나와 장항선 열차를 타거나 온양까지 빙 돌아서 가야만 했다. 삽교방조제는 태안반도의 주민들의 육로교통에 커다란 혁명이었다.
/이재언 목포과학대 섬해양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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