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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거 한 주먹이믄 직호여!

이명재의 충청말 이야기 (38)

2020.04.16(목) 00:21:14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이거 한 주먹이믄 직호여! 1


직호는 즉효(卽效)의 충청말
‘뭇된 눔덜헌틴 몽딩이가 직효’
‘앓는 소 양개비 줄기믄 직호여’
충청인들 복잡한 말 간편하게 써

 
‘소 속앓이 헐 적인 양개비 한 주먹이 직호여. 끙끙 앓다가두 쇠물 한 바께쓰믄 그 자리서 일난다니께.’
셋째아버지는 부지런했다. ‘핵겨가 머니께 열두 살이 되믄 핵겨 가자.’ 약속한 아버지가 난리통에 돌아갔다. 두 형이 전쟁통에 뛰어들었다. 할머니와 고모들 속에서 열두 살 셋째아버지는 그중 남자였다.
형들이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전쟁은 3년이나 이어졌다. 그 전쟁통에서 형들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금세 돌아오지 않았다. 국방의 60개월 의무기간은 참 길었다.
셋째아버지는 형들 대신 일터로 나섰다. 15살에 꼴머슴살이를 시작하여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장가를 들고 집을 사고 땅을 샀다. 그 집에 아이들을 채우고 그 땅에 농사를 짓고 외양간에 소를 키웠다.

셋째아버지의 소는 복스러웠다. 외양간엔 수북이 짚이 깔렸다. 그 푹신한 정성만큼 소가 살쪘다. 그러나 가끔씩 소는 배앓이를 했다. 입맛이 떨어졌다. 작두로 썬 여물을 먹지 않았다. 쇠죽솥에 겨를 두어 바가지씩 넣어 끓인 쇠죽에도 고개를 돌렸다. 외양간을 치울 때도 벌떡 일어서지 못했다.

그럴 때면 셋째아버지는 양귀비 몇 줄기를 쇠죽에 넣었다. 6월이면 양귀비는 붉은 꽃대궁을 내밀었다. 아편의 재료가 되는 양귀비, 재배가 금지된 마약식물.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야생의 양귀비가 산기슭 어느 구석에 자라나던 시절이 있었다.

셋째아버지는 산비탈에서 꼴을 베다가 붉은 꽃대궁을 만나곤 했다. 그럴 때면 낫으로 베어 꼴짐에 끼웠다. 그 한줌을 헛간 처마 속에 매달았다. 그리고 한해 두어 번은 속앓이를 한다는 소에게 먹였다. ‘양개비 ㅤㅁㅔㅊ 줄기믄 직호여. 그거 느서 끓인 쇠죽 멕이믄 직방이루 일어슨다니께. 담날 아침이믄 아펐던 표두 안나.’
‘직호’는 ‘즉효(卽效)’의 충청말이다. 서울 ‘개똥이’가 충청도에 와 ‘개띵이’가 되는 것처럼, 서울말 ‘즉효’는 충청도에 와 ‘직효’가 되었다.

이것은 쉽게 고쳐 말하는 충청도의 말법이다. 충청인들은 복잡한 말을 간편하게 고쳐 쓴다. ‘직호’는 ‘직효’를 더 편하게 고친 말이다. 배운 충청인들은 그럴 듯하게 ‘직효’라 쓰고, 땅과 함께 살아가는 셋째아버지는 충청도 농군답게 ‘직호’라 썼다. 세월은 논밭에서 일어나 아스팔트와 빌딩 위로 밀려갔다.

셋째아버지와 함께 늙은 충청말들은 허리가 굽어 미세먼지에 덮였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가 가득한 세상. ‘워쩠거나 뭇된 눔덜헌틴 몽딩이가 직효여.’ 외치던 충청인의 목소리가 그립다. 코로나를 한 방에 날려버릴 몽딩이 하나 워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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