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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학자들 뱃놀이는 낭만이었다

유교의 산수관③ 낙화암 뱃놀이의 풍류

2020.04.15(수) 23:53:01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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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운보 김기창(1913~2001) 作  /부여군 제공

▲ 낙화암-운보 김기창(1913~2001) 作 /부여군 제공


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운송수단이다. 인류는 이미 4천여 년 전부터 배를 사용했다고 역사가 기록하고 있고, 유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기원전 7천여 년 전에 네덜란드에서 발견된 통나무 쪽배라고 한다. 그러나 인류가 기존의 대륙을 떠나 4만5천 년 전 호주에 정착한 사실로 보았을 때, 그보다 훨씬 이전에 배가 발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헤엄을 쳐서 대양을 건너가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배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고, 산업혁명 이전까지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운송수단이자 전쟁도구로서의 위력을 발휘했음은 틀림이 없다.

현대의 가장 보편적인 운송수단인 자동차를 우리가 단지 ‘수송’이라는 일차적인 용도로만 사용하지 않듯, 배는 문화의 역사와 결합하여 또 다른 용도로 쓰이기 시작했다. 바로 선유(船遊), 즉 뱃놀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로 드라이브와 여행을 즐기듯, 전근대시대의 배는 고급스런 풍류와 유희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저 유명한 이백(李白)이나 소식(蘇軾)으로 대표되는 시인들의 뱃놀이에는 음주와 시가가 빠질 수 없었다. 오죽하면 이백은 장강에서 취중에 뱃놀이를 하다가 달을 잡으려고 물에 뛰어들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남겼겠는가?

뱃놀이의 낭만은 엄숙한 이미지가 강한 유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유학자들에게 뱃놀이는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물론 오늘날 나라나 집안이 어수선할 때 골프를 치는 공직자들이 비난을 당하듯, 시의(時宜)를 헤아리지 않은 뱃놀이는 철저하게 배격되었다. 그러나 농한기나 평화로운 시기 또는 관직에 있지 아니할 때, 사적으로 뱃놀이를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뱃놀이는 오히려 유학자들이 지나치게 진지하지만은 않으며, 때로 낭만이 충만한 인물이었다는 점을 알려주는 단면이다. 고려조 이곡·이색 부자를 비롯하여 조선조의 송준길, 송시열과 같은 지역의 많은 성리학자들이 뱃놀이를 즐기며 이와 관련된 시와 문장을 남겼다. 지역의 학자들뿐만 아니라 황준량, 조위한, 정약용 등과 같은 타지의 학자들도 유서 깊은 백마강, 낙화암 등을 찾아 선유를 하고 감회에 젖은 글을 남겼다. 유명한 정약용이 부여의 자온대에서 뱃놀이 하며 남긴 시를 감상해보자.
 
강 위에 비친 이 맑은 달빛
세상사람 중 뉘와 함께 바라볼까
푸른 하늘은 굴러가는 달을 품고
가을 강물은 달과 함께 빛나는구나
오늘밤엔 한바탕 호방히 놀며
떠도는 처지 잊고 잠시 즐기네 끼륵끼륵 바다로 돌아가는 저 기러기
어인 일로 구름 끝을 지나가느냐
(다산시문집, 자온대 밑에서 달밤에 뱃놀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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