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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세계유산 백제역사 유적지구에서 한류원조 백제를 즐기다

새로 배우는 충남학(19)백제 흥망의 현장 정림사지

2019.09.26(목) 22:08:28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백제문화제 어가행렬 재현 장면

▲ 백제문화제 어가행렬 재현 장면


 

‘부여를 계승하는 백제는 국호를 남부여로 정하고 강으로 둘러싸여 비옥한 반월형의 사비로 천도한다.

 

백제를 중흥시킨 성왕은 자신의 재위 기간 절반을 공주에서 지내며 국력을 축적한 , 마침내 538 사비(오늘날 부여) 천도한다. 국호도 백제에서 남부여로 고치고 잃어버린 한강 유역의 구토 회복을 위해 심기일전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재위 36년만인 556 신라와의 삼년산성 전투에서 전사한다.

부여에서 백제유적과의 만남은 정림사지다. 정림사지는 주변을 발굴해 금당지와 강당지를 비롯한 연못을 구비해 완전한 사찰의 형태를 갖춘 모습을 구현했다. 그리고 기와를 쌓아 만든 와적기단은 예전엔 보던 모습이다.

정림사지는 백제로서는 치욕의 현장이기도 하다. 사비성이 나당 연합군의 침공으로 함락될 지경에 이르자 의자왕은 긴급히 웅진성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좌평의 아들이던 예석진에게 포박되어 당나라 소정방에게 인계되었다. 그리고 8 15 의자왕은 정림사지에서 당나라 소정방에게 술잔을 올리며 항복을 표했다. 이로써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온조대왕이 나라를 세운 이래  678, 그리고 성왕이 사비로 환도한 123년의 역사를 남기고 사라졌다.

백제를 멸망시킨 소정방은 이곳 정림사지 5층탑에 백제를 평정한 기록을 남겨 ‘평제탑(平濟塔)’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치욕의 역사이긴 하지만 정림사지 5 석탑은 목탑의 한계를 극복한 것으로 우리나라 전탑 양식의 변화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1500 년의 풍파에도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백제의 향기를 품어내는 석탑은 완벽한 균형미를 갖춘 백제를 대표하는 탑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백제의 왕도였던 공주시와 부여군에서는 매년 백제문화제를 개최하여 동아시아 문화강국이었던 백제의 역사 문화를 만날 있다. 이번 주말부터 열흘간(9 28()~10 6()) 개최되는 65 백제문화제에 가족과 함께 참여하여 백제의 예스러운 멋과 흥겨움을 느껴보길 바란다.

/이명우 ()충남평생교육진흥원 충남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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