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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조선왕조 열녀 화순옹주 정절문

2019.09.24(화) 15:19:39 | 도희 (이메일주소:ass1379@hanmail.net
               	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 열녀 화순옹주 정절문 1
 
충남 예산군 용궁리에 있는 화순옹주 정절문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5호로 영조의 둘째 딸이자 김정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문이다. 화순옹주는 13세에 영의정 김흥겸의 아들 김한신과 결혼했다. 김한신이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화순옹주는 14일 동안 곡기를 끊고 입안에 고이는 침마저 뱉어가며 남편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옹주가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고 죽었으니 불효라 하여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다. 후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즉위하여 고모의 갸륵한 마음을 헤아리고 열녀문을 내렸다. 
 
조선왕조 열녀 화순옹주 정절문 2
 
화순옹주 정절문 입구 대문 위에 홍살문 장식물 아래에 쓰인 글씨는 정조의 글씨다.
우측에서부터 읽어보면 '열녀 유록대부 월성위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 증지점효 공김한신 배화순 옹주지문'
 
조선왕조 열녀 화순옹주 정절문 3
 
한양에서 당시 전염병이 돌아서 노약자들이 병에 전염될 위기에 있을 때 11명의 딸을 둔 아버지 영조는 몸이 유난히 약한 둘째딸 화순옹주를 걱정해 전염병 지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오지마을 청정지역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김한신의 아버지 김흥겸이 영의정으로 영조를 가까이 모셨고 어느 날 영조는 김흥겸을 불러서 딸과 김한신의 혼인을 요청한다.
 
조선왕조 열녀 화순옹주 정절문 4
 
화순옹주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주춧돌이 보인다. 원래 이곳에는 월성위 가문에서 조상의 제사를 지내려고 세운 제실이 있었는데, 전쟁으로 집은 불타 없어졌다.
 
조선왕조 열녀 화순옹주 정절문 5
 
조선왕조 열녀 화순옹주 정절문 6
 
조선왕조 열녀 화순옹주 정절문 7
 
조선왕조 열녀 화순옹주 정절문 8
 
조선왕조 열녀 화순옹주 정절문 9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189호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인 김한신과 부인 화순옹주의 합장묘다. 영의정을 지냈던 김흥겸의 아들 김한신은 인물이 출중하고 재주가 뛰어나 13세에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했다. 이곳 일대 부지를 영조로부터 하사받고 충청도 각 53개 고을에서 한 칸식 기부금을 받아 집을 지었다. 그 집이 바로 추사고택이다. 김한신은 귀한 신분임에도 평소에 비단옷을 입지 않고 늘 겸손하게 살았다고 한다.

김한신과 화순옹주 합장묘 앞에 있는 비문은 영조가 일흔이 되었을 때 딸의 지극한 마음을 헤아려 비문을 세우고 직접 글씨를 썼다.

조선왕조 열녀 화순옹주 정절문 10
▲영조의 글씨가 적힌 어제비

위 비문의 글씨를 읽어보면 '유명조선 유록대부 월성위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 증시점효 김공지묘 화순옹주부좌 망칠지년 영조이사'
 
조선왕조 열녀 화순옹주 정절문 11 
 
조선왕조 열녀 화순옹주 정절문 12
 
화순옹주 합장묘 둘레는 기와를 얹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는데 이는 신분이 높은 왕족의 무덤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곡장이라고 한다.
 
조선왕조 열녀 화순옹주 정절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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