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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왕복 서간, 선비들의 지식 저술 방식

충남유교이야기⑫조선 선비들의 철학논변

2019.09.09(월) 12:38:46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조선시대 학자들의 서간문. 이와 같은 서간문이 모여서 학문적인 저술이 되었다. 사진은 윤선거의 간찰이다.

▲ 조선시대 학자들의 서간문. 이와 같은 서간문이 모여서 학문적인 저술이 되었다. 사진은 윤선거의 간찰이다.


 

 

일반적으로 이황과 기대승 사이의 사단칠정논변, 서인과 남인 사이에 있었던 예송논쟁, 그리고 이간과 한원진 사이에 펼쳐진 인물성동이론을 조선 유학의 3 논쟁으로 꼽는다.

그러나 사실은 외에도 철학적 쟁점을 다룬 논쟁은 많았다. 우리나라 철학 논변의 시초라고 있는 손숙돈과 조한보 사이의 무극태극논변을 비롯하여, 이이와 성혼 사이의 인심도심논변 등도 매우 중요한 논쟁이다.

조선시대 이러한 철학적 논쟁은 보통 서신 왕복을 통해 진행되었다. 한쪽이 어떤 쟁점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여 편지를 보내면, 다른 한편이 그것을 받아 읽고 그에 대한 반박이나 논평을 제시한다.

우편제도가 없었던 시절이니 편지는 주로 그쪽으로 가는 인편을 통해서 전달되었고, 왕복하는 사이에 사색의 시간을 거쳐 이론은 깊어지는 것이었다. 철학 논변이 년씩 이어지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였다.

혹자는 이러한 논변들을 현실과는 관계없는 탁상공론이나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부한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자면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일 있다.

그러나 철저한 유교사회였던 당시의 관점에서 보자면 () 마음에 관련된 문제는 매우 절실한 것일 있다. 특히 마음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당시의 학자들이라고 해서 이러한 논쟁에만 몰두했던 것은 아니다.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는 가운데 조금 근본적인 철학적·형이상학적 문제를 탐구하는 것은 일종의 지적 탐구이자 저술 작업이었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책이나 논문과 같은 독백의 방식으로 글을 쓰고 지식을 창조한다면, 당시의 사람들은 책이 아닌 왕복 서간의 방식으로 지식을 기록했다. 지식 기록의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오늘날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글을 쓰는 지식인의 행위를 비난할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지식 저술 방식을 비난해서는 것이다.

충청지역에서 펼쳐진 왕복서신 논변인 인물성동이론 역시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적 저술의 하나이다. ‘호락논변’으로도 불리는 인물성동이론의 내용은 다음 회차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치억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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