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교육사회

금강을 해자로 둔 천혜요새 공산성

새로 배우는 충남學(18)

2019.09.09(월) 12:22:01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공산성 초입을 지키는 각종 공덕비

▲ 공산성 초입을 지키는 각종 공덕비



금강 물줄기 방패삼아 축조

이괄의 난에 인조 피신

천주교 순교 영욕의 역사

 

천안이나 대전에서 국도를 타고 공주에 이르러 비단결 같은 금강을 가로지르는 금강철교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공산성. 

금강의 물줄기를 방패 삼아 축성된 공산성은 불과 해발 80m(최고 표고 110m) 이르는 나지막한 둔덕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이 바로 백제역사유적지구 번째 코스로,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한성시대를 마감한 백제가 회생의 기회를 잡기 위해 둥지를 곳이다.

아버지 개로왕이 피살되고 고구려군에 쫓겨 남으로 내려온 문주왕이 금강을 건너 비로소 한숨을 돌린 이곳은, 이름조차 없는 낮은 둔덕에 자리하지만 앞엔 강물이 넘실거리고 후면은 깍아지른 듯한 가파른 산세를 보여준다.

주차장에서 공산성으로 들어서는 관문인 금서루에는 다섯 가지 깃발이 펄럭인다. 백제는 사신도를 기본으로 개의 깃발과 중앙기를 합쳐 다섯 깃발을 군사 훈련 등에 사용했다.

성의 이름은 백제시대엔 웅진성이었고 조선 중기에 공산성으로 명명되었는데, 오늘날에도 공산성으로 불린다.

금서루를 지나 조금 중앙부로 걸어가면 조선시대 16 왕인 인조와 얽힌 이야기들이 전해 오는 쌍수정에 이른다.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피신한 인조는 이곳에서 난이 평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난을 평정했다는 전갈을 받고 그간 시름을 함께한 그루의 나무에 옥대를 하사하고 3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유래에서 비롯된 정자가 쌍수정이다. 지금은 나무가 사라지고 없지만 쌍수정은 남아 그날의 인조가 겪었을 감회를 전해준다. 쌍수정 아래엔 백제시대의 연못(연지) 자리하고, 이어 나타나는 왕궁지가 지난날의 영욕을 웅변한다.

공주에서 문주왕과 삼근왕, 그리고 나제 동맹을 맺었던 동성왕까지 호족들에게 피살되는 시련을 겪은 백제는 마침내 25 무령왕대에 이르러 국력을 회복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성왕이 즉위한 이후 국력을 대외에 과시하며 웅진보다 비옥했던 사비(부여) 천도를 한다.

이곳 공산성에서 서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수백 명의 천주교도가 처형됐던 황새바위가 보이고, 옆으로 많은 백제의 고분군이 위치한 송산리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이명우 ()충남평생교육진흥원 충남학 강사

 

 

도정신문님의 다른 기사 보기

제1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