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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해 임시정부청사에 울린 독립군 아리랑

생생현장리포트 - 신용희 금강뉴스 대표

2019.06.17(월) 10:08:32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중국 상해임시정부 청사를 찾은 공주아리랑 회원들

▲ 중국 상해임시정부 청사를 찾은 공주아리랑 회원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겨주소 이조왕 말년에 왜난리나니 이천만 동포들 살길이 없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겨주소 일어나 싸우자 총칼을 메고 일제놈 처부셔 조국을 찾자.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겨주소 고향 산천아 있거라 이내몸 독립군 떠나 가노니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겨주소 부모님 처자들 이별을 하고서 왜놈을 짓부셔 승리한 후에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겨주소 태극기 휘날려 만세만만세 승전고 울리며 돌아오리라

 

노랫말은 일제 강점기 독립군들이 불렀던 ‘독립군 아리랑’ 전문이다. ‘독립군 아리랑’이 6 9 중국 상해 임시정부청사 앞에서 공주소리꾼 이걸재와 공주아리랑 회원들에 의해 불려졌다.

고향땅을 떠나 조국독립을 위해 일군과 싸웠던 독립군들의 한맺힌 절규와 피멍이 노랫말 곳곳에 스며든 노랫말을 공주아리랑 회원들은 조용하나 힘있게 불렀다. 관광차 왔던 관광객들이 경외의 눈길로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왜냐하면 중국 당국이 이곳에서의 집회나 현수막 등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중국 공안원에 끌려갈 수도 있다. 기념관 안에서 노래는 커녕 사진 촬영도 금지돼 있다.

많이 불리는 아리랑이 3분박의 세마치 장단인데 반하여 ‘독립군 아리랑’은 4분의 2박자인 행진곡 형식을 띠었다. 그럼에도 행진곡풍의 ‘독립군 아리랑’ 가락이 처연하게 들리는 것은 기자만의 느낌이었을까? 마지막 5절에서 이걸재 소리꾼은 특유의 한이 서린 탁음으로 “태극기 휘날려 만세 만만세”를 외쳐 이를 지켜보면서 함께 불렀던 한국 관광객들과 일행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일제 시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의 상해, 이동을 거쳐 충칭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바쳐 노력한 흔적들이 넓지 않은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독립군 아리랑’ 노랫말은 백범 김구 선생이 지어 연변 조선족들 사이에 불러오던 것을 이십여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이 채록하여 이걸재 소리꾼에게로 이어졌다.

이걸재 소리꾼은 방명록에 “이제야 왔습니다. 부끄럽습니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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