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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조선 임금들의 휴양지 온양행궁 흔적 엿보기

아산 온양관광호텔에서 만난 신정비와 영괴대 그리고 어의정

2018.08.19(일) 20:21:30 | 메아리 (이메일주소:okaban@naver.com
               	okab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행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행궁은 임금이 본궁 밖에서 머무는 임시장소로 사용하던 별궁인데요.
강화도의 강화행궁, 남한산성의 광주행궁, 북한산성의 양주행궁, 전주행궁 등 피난, 항전, 옥새 보관 등 전란기 피난처로 이용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하죠!
충남 아산에 있는 온양행궁은 치료 겸 휴양을 목적으로 사용하던 별궁이었는데요.
1459년 조선 시대의 행궁으로 온천욕을 통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용하였던 일종의 요양소였다고 합니다.

조선임금들의휴양지온양행궁흔적엿보기 1

1760년 사도세자(훗날 장헌세자)가 영조를 따라왔을 때 무술을 연마하던 사장(沙場,임금이 사냥할 때 몰이하며 짐승을 쏘는 곳)이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학문에 집중하여 현명한 군주가 되기를 바랐지만, 사도세자는 무술에 흥미를 느끼며 화살을 날렸던 시절을 가장 행복해했다고 하죠!
이후 정조는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사도세자)의 애틋한 마음을 기리며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고 단을 쌓아 친필로 ‘영괴대(靈槐臺)’라 쓴 비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뒤주에 갇혀 최후를 맞은 아버지(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애틋한 마음이 담긴 영괴대
▲ 뒤주에 갇혀 최후를 맞은 아버지(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애틋한 마음이 담긴 영괴대

영괴대 누각 옆에는 온천리 석불(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27호로 지정)이 있었는데요. 조선 후기 작품으로 원래 신창면에 파손되어 산재해 있던 것을 모아 1927년 무렵 지금의 자리에 옮겨졌다고 합니다. 온천리 석불은 질병을 다스리는 약사여래의 신묘한 힘이 온천에 더해지길 바라는 뜻에서 세운 것으로 두 손에는 무언가를 쥐고 있어서 스님처럼 보인다고 한다는데 약사여래 불상이라고 합니다.

두 손에 무엇을 들고 마주 쥔 채 가슴 위까지 끌어올린 형태의 온천리 석불
▲ 두 손에 무엇을 들고 마주 쥔 채 가슴 위까지 끌어올린 형태의 온천리 석불

온양관광호텔 내부 1층에 있는 온양행궁 전시관을 둘러보게 되었는데요. 행궁에는 임금이 머무는 내정전과 집무를 보는 외정전, 목욕하는 탕전이 있으며, 여러 부속 건물도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온양행궁 전시관… 조선 시대 임금들의 휴양과 구정을 살피던 온양행궁의 변천사
▲ 온양행궁 전시관… 조선 시대 임금들의 휴양과 구정을 살피던 온양행궁의 변천사

왕이 오랜 기간 머물렀던 만큼, 한양에 있는 주요 기관도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그 규모는 일반 궁궐의 약 30~20분의 1 수준이었으며, 동쪽 문을 정문으로 동서남북 4개 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공간 주변으로는 사간원, 승정원, 홍문관 등의 정부 행정기관의 건물과 무예 별 감청, 별무사칭 등 임금을 호위하기 위한 군사기관 건물 등을 두어 행궁의 역할 수행에 충실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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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정조가 영괴대를 건축하고 영괴대비를 세웠다고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영괴대비와 영괴대의 모습을 그린 영괴대도에는 회화나무 3그루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요.
지금 그 자리에는 회화나무는 고사하고 영괴대비와 영괴대만 남아있었습니다.

온양행궁 전시관에 있는 영괴대도
▲ 온양행궁 전시관에 있는 영괴대도

세종의 안질을 치료하였다고 알려진 어의정과 세조가 신정을 발견하고 세운 신정비
▲ 세종의 안질을 치료했다고 알려진 어의정과 세조가 신정을 발견하고 세운 신정비

세종의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온양에 행차하였다고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세종 15년 3월 25일 자)과 세종의 안질 치료를 하였다고 알려진 어의정 모습입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4호 어의정은 용화동 283-3번지에 있다.

어의정(御醫井). 세종대왕이 눈병을 치료했다는 우물
▲ 어의정(御醫井). 세종대왕이 눈병을 치료했다는 우물

세조가 충청도를 두루 살피고 속리산 북천사를 거쳐 환도하다가 온양에 방문했을 때 온천 옆에서 냉천을 발견하였는데요. 이를 ‘신정(신성한 우물)’이라 칭하고 1476년에 건립한 비석입니다.

신정(神井)과 신정비각. 세조가 발견했다는 신정
▲ 신정(神井)과 신정비각. 세조가 발견했다는 신정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러 온천역사를 이어온 온양행궁은 태조대왕부터 흥선 대원까지 많은 조선의 왕과 왕가의 가족들이 건강 치유와 보양을 위하여 찾았던 곳이다.
1904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의 손에 빼앗겨 온양온천 주식회사에 소속되어 상업시설로 변하여 온양관이라는 온천 숙박업소로 변했다고 합니다. 왕의 거처인 정전(正殿)이 있던 자리조차 일본식 다다미방으로 단장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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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으로 전소되어 신정비와 영괴대만 남아 1953년 당시 교통부는 6·25 전쟁으로 불탄 신정관 자리에 온양 철도호텔을 신축하였고, 2003년 온양관광호텔로 변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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