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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줄 만들기 70년… "내 생전 평양에서 줄 한번 당겨봤으면"

'당찬 당진사람 4호' 선정된 기지시줄다리기 줄제작 기능보유자 장기천 옹

2016.10.15(토) 11:28:28 | 오수금 (이메일주소:sjhdk334@hanmail.net
               	sjhdk334@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 당진시에서는 한가지 일에 매달려 묵묵히 일해 오면서 당진은 물론 충청남도를 빛내며 가꾸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발전에도 기여하는 소중한 분들을 찾아 <당찬 당진사람>이라는 타이틀로 선정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금년에 벌써 4호까지 탄생했는데 한달도 채 안된 지난 9월20일께 발표된 영광의 당찬 당진사람 4호는 다름아닌 기지시줄다리기 줄 제작 기능보유자인 장기천 선생님이시다.
 
장기천 선생님(이하 장기천 옹)께서는 올해 연세가 82세. 이미 15세 소년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당진에 살면서 한번도 거르지 않고 자그만치 70년 세월 가까이 줄을 만들어 오셨다.
당진의 기지시줄다리기가 어떤 무형문화재인지는 다 알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전통문화이다. 이 줄다리기용 줄을 줄을 만드는 데 인생을 바치며 기지시줄다리기의 보존과 계승에 앞장서 오신 인물이다.

장기천 옹을 뵙고자 연락을 드려봤더니 마침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앞 넓은 뜰에서 줄을 제작하고 계신다 하여 현장을 달려가 뵈었다.
오늘은 당진으로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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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에 올라가는 길 왼쪽에 세워져 있는 표지석.
국가무형문화재 제 75호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임을 알리는 표지와 사진 부조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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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 전경. 이 박물관에 관해서는 많은 분들이 자주 포스팅을 통해 소개를 해 주셨기 때문에 본 란에서는 잠시후 간략히만 소개할 예정이다.

여기 줄 만들기를 하고 계신 장기천 옹께서 계신다.
저만치 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이 보이고 그 앞 잔디밭 뜰에서 다음에 쓸 줄을 꼬고 계신 이분. 이번에 당찬 당진사람 제 4호로 뽑히신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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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15세 당시에 어떤 계기로 줄다리기의 줄을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내가 어렸을적에는 왜정(일제 강점기)때여. 그때 나이가 15살이었지. 어린게 뭘 알겄어? 그냥 마을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심부름도 하고 잔일도 도와드렸지. 그렇게 어른들을 따라다닌 이유가 뭔지 알어? 먹을게 없어서 배고팠기 때문이지. 어른들을 따라 다니다 보면 가난하던 시절에 밥이라도 한술 더 얻어먹을수 있으니까 그랬던 거여. 그때도 줄다리기는 있었응께 줄 만드는데 짚도 나르고 새끼줄도 꼬아보고 낫이나 작두 같은 연장도 나르고... 그런 잔심부름도 해 드리고 그러면서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한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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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천 옹께서는 하얀 목장갑을 끼고 쇠 가위를 쥔 손으로 줄을 연신 만들면서 묵묵히 말씀을 해 주셨다.

그렇게 어린시절부터 시작한 줄 만들기.
처음에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서 어른들을 따라다닌게 점차 진정한 ‘줄꾼’으로 변해 갔고 이분이 본격적으로 줄 제작에 관심을 갖고 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전승 발전시켜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해마다 기지시줄다리기 축제가 열리지만 그대는 3년에 한 번씩 기지시줄다리기 난장이 섰다.
 
여기서 잠깐.
기지시줄다리기가 어떤 문화재인지 중간에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 이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 기지시는 전통적으로 풍수학상 옥녀가 베짜는 형상이라 한다. 베를 짜는 시늉으로 줄다리기가 생겼다고 하기도 하고, 또 기지시리의 지형이 지네형이어서 지네모양의 큰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했다는 설도 있다.
합덕에서 기지시리를 거쳐 당진 서산으로 가는 국도를 경계로 해서, 국도의 남쪽은 물 위, 즉 수상(水上)이라 하고, 북쪽은 물 아래, 즉 수하(水下)라고 부르는데, 수하인 송악면 일부와 송산면 우강면 용대면 석문면과 당진 일부, 신평면 일부 마을과, 수상인 송악면 일부와 순성면 면천면과 합덕 일부, 당진 일부 마을이 서로 줄다리기 대결을 한다.
 
참가인원에는 제한이 없고, 거주자는 남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므로, 한쪽이 많을 수도 있다. 줄이 길기 때문에 긴 국도에서 만든다. 먼저 동아줄을 만들고 다시 세 개로 한 줄을 만드는데, 큰 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 수 없어서 줄 꼬는 틀을 이용한다. 다 만든 원줄은 사람이 올라앉아 양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지름이 1m쯤 된다. 원줄의 작은 것은 아홉 가닥, 큰 것은 열다섯 가닥이고, 중줄은 열두 가닥이고, 길이는 50∼60m쯤 된다.
원줄은 본부에서 만드나, 곁줄은 각 마을에서 제각기 만들어 와서 단다. 수하인 물 아래가 암줄이고 수상인 물 위가 수줄이 되는데, 암·수 두 줄을 연결시키면 원줄이 100m가 넘고, 곁줄은 원줄보다 길기 때문에 줄의 전체길이는 150m가 훨씬 넘는다.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양편 주민들은 농악을 울려 기세를 올리며 줄 옆에 모여서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끝.
 
그렇다면 과연 줄다리기용 줄을 만드는데는 어느 정도의 짚이 소요될까.
줄을 만드는데 필요한 짚의 무게만 자그만치 40톤이라 한다. 이것을 볏단으로 환산하면 약 4만단이 필요한데 이것을 다시 논의 면적으로 나누면 12000평~15000평이라고.
실로 엄청난 양의 볏단과 짚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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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장기천 옹 이야기.

1950년대 당시에 기지시에서는 많은 이들이 죽고 이득천 옹이 유일하게 큰 줄을 만들 수 있었던 분이었다. 안섬포구에서 어업을 하는 이분이 어느날 돌아가신 뒤 줄을 만드는 것을 제대로 알고 체계적으로 전수받은 사람이라고는 장기천옹 뿐이었다고 한다.

이때 그는 근근이 이어지던 전통 방식의 줄 제작이 단절될 것을 우려해 줄 제작자의 길로 들어설 것을 결심한다.
그렇게 다시 시작하며 줄 제작을 이어오던 그는 지난 1981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국풍81 행사 당시 기지시줄다리기를 시연해 이듬해 기지시줄다리기가 중요무형문화제 제75호로 지정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산업화 시대 줄다리기 폐지론이 고개를 들 때도 전통을 잇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묵묵히 줄 제작에 일생을 바친 끝에 2001년 마침내 줄 제작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소중한 전통문화를 유지 계승 발전시켜 오신 노력을 인정받아 당진에서 당찬사람으로 선정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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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기지시줄다리기 박물관 현관 바로 전면이다. 줄의 원형 상징물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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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다리기 박물관 관람실 내부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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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다리기 박물관 관람자들의 소원지와 사진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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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다리기에 쓰였던 깃발과 제복, 북, 꽹과리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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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동영상으로 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 이 장면은 세가닥 따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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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짚을 오른쪽으로 교차시키고 가운데 줄을 아래쪽으로 하여 왼쪽 방향으로 교차시키면서 세가닥땋기 줄을 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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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새끼 꼬기는 두가닥 줄이 오른쪽으로 꼬일수 있게 오른손을 위로 하여 앞으로 밀며 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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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새끼꼬기는 줄을 꼬아준 후에는 두줄을 잡아 아래쪽으로 당겨주어 매듭을 촘촘히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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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주미. 즉 줄다리기 축제를 하기 위해서는 술을 담가야 하는데 술 빚을 쌀은 각 집집마다 조금씩 추렴하여 이렇게 모아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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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줄 만드는 야외 현장으로 나가 보았다.
여전히 여러사람들이 합심해 줄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지난 2015년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줄다리기는 당진시뿐만 아니라 영산줄다리기, 삼척기줄다리기, 남해선구줄끗기, 감내게줄당기기, 의령큰줄땡기기가 더 있다.
그리고 해외에서도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줄다리기가 함께 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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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천 옹의 줄 만들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연세를 고려하면 빨리 끝내셨으면 하는 바램이 들 정도로 줄 만들기가 쉬운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천 옹께서는 “젊은 사람들도 이런데에 관심을 좀 많이 가졌으면 좋겄어”라시며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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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젠가는 북한에서도 줄다리기를 하는 날이 있겄지? 내 생전에 평양이나 개성에 가서 한번 줄 좀 당겨봤으면...”하는 진한 아쉬움을 나타내셨다.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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