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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홍성을 빛낸 위인 한용운 선생 생가지

2012.08.31(금) 08:58:18 | 쟈스민 (이메일주소:mee0102@naver.com
               	mee010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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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는 유독 위인들이 참 많이 있다. 김좌진 장군을 비롯해 최영 장군, 매죽헌 성삼문, 남당 한원진, 지산 김복한, 한성준 선생, 이응로 화백,  님의 침묵으로 잘 알려진 한용운 선생 또한 홍성출신으로 그의 생가지와 만해문학체험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한용운 선생과 관련한 곳으로는 님의 침묵을 탄생한 인제 백담사와 만해마을을 비롯해 유택은 서울 성북동 심우장이지만 그의 생가지는 홍성에 자리하고 있다.

1991년부터 한용운(韓龍雲:1879~1944)의 생가를 중심으로 주변지역을 사적화하기 위한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생가가 쓰러져 없어진 것을 1992년에 복원했다. 생가지 가옥의 형태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초가로 양 옆으로 1칸을 달아내어 광과 헛간으로 사용하고 울타리는 싸리나무로 둘렀다.

한용운 선생 생가지는 1989년 12월 29일 충청남도기념물 제75호로 지정되었고 생가지를 중심으로 만해문학체험관과 시비공원이 함께 자리하고있어 시와 불교에 관해서 꼭 흥미가 없다고 하더라도 생가지와 문학체험관을 둘러본후 시비공원을 따라 산책하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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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은 1879년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청주이고 아명은 유천, 호적명은 정옥, 계명은 봉완,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이다.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4세에 결혼하였으나 16세에 돌연 집을 떠나 설악산 백담사 오세암 에 은거하여 수년간 불경을 공부했다. 그 이후 하산하여 서양문물에 대한 관심과 세계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연해주와 만주를 거쳐 돌아다니다가 1905년 27세에 설악산 백담사에서 연곡의 가르침을 받고 정식으로 득도하여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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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용운 생가지에 쓰여진 '님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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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용운 생가지, 사당 앞에 핀 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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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해문학체험관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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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해문학체험관 내부, 그의 생애와 업적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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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대전

 
1914년 불교대전과 함께 청나라 승려 내림의 증보본에 의거하여 채근담 주해본을 저술했다. 1908년 5월부터 약 6개월간 일본 도쿄와 교토를 중심으로 일본의 풍물을 몸소 체험하며 새로운 문물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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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독립선언서


1919년 3·1운동 때는 독립선언 준비과정에서 일본 여행 중에 동지가 된 최린과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고 1920년 만세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3년 동안 옥고를 치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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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의 침묵 출간


1922년 출옥하여 각지로 전전하며 강연을 통해 청년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1925년 백담사에서 쓴 시집 『님의 침묵』을 간행했다. 그는 이미 1918년 유심에 몇 편의 시를 발표했었고 그 후에도 흑풍(1935), 후회(936), 박명(1938) 등 장편소설과 한시, 시조를 남겼으나 님의 침묵 한 권으로 그의 문학사적인 결정적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그 문학사적 중요성은 , 문단적 시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당시의 문단 테두리 안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못했던 문학적 깊이와 폭을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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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년에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 은거


50세를 전후하여 성북동 심우장에 은거하면서 1927년에는 신간회의 발기인이 되어 경성지부장을 역임했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는 민중대회를 열고 독립운동을 도왔으며, ‘조선불교동맹’과 ‘만당’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활약했다. 1931년 '불교'지를 인수·간행하여 불교청년운동 및 불교의 대중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944년 5월 9일 성북동 심우장에서 66세를 일기로 중풍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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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훈장


유해는 화장되어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고 19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중장이 수여되었다. 1967년 파고다공원에 비가 건립되었고, 1973년 신구문화사에서 한용운 전집(전6권)이 간행되었으며, 이후 현재에도 한용운의 생애와 사상은 많은 학자들 연구대상이 되어 불교, 독립운동, 문학 등에 걸쳐 활발히 업적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다.

 

 

한용운 선생 생가지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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