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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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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우리동네 이야기

전체 : 34개 / 페이지 : 2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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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희망 있는 마을” 생태복원·친환경농업으로 실현
  • 열무축제·마을콩두부 소득사업, 미니버스·공연돔 숙원 이뤄가 작년까지만 해도 논산 시내에서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 타야 하던 마을, 한때는 강경포구의 번성에 힘입어 시끌벅적했으나 교통의 중심이 철도와 도로를 따라 옮겨가며 사람들이 떠나며 적막이 감돌던 곳. 바로 강경읍 채운2리 황금빛마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루에 네 번이나마 미니버스가 들어오고 해마다 마을에서 키운 콩밭열무를 맛보러 삼복더위에도 수천명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꿈과 희망 넘치는 마을이다. 지난 2011년부터 이장을 맡아온 김시환 씨는 “꿈과 희망이 있는 마을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들고나와 이장에 당선됐다. 아름다운 경관과 생태를 보전하며 태초의 모습을 회복하는 데 농촌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김 씨. 그는 5곳에 분산돼 있던 마을 쓰레기장을 한 곳으로 모으고, 인식 개선을 통해 농약 사용을 줄이며 친환경농업의 필요성을 알렸다. 김시환 씨와 주민들이 생각해 낸 것은 마을의 ‘콩밭열무’. 김 씨의 기억 속 여름이면 마을회관 옆 막걸리집 앞엔 콩밭열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장사꾼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며 드나들어 콩밭열무를 가져가고, 남은 건 아낙들이 4km를 이고 강경장까지 나가 팔아 자식을 키워내고 마을을 먹여 살렸다. 당시 콩밭열무는 없어 못팔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주민들에게 공통적으로 행복하고 넉넉했던 모습으로 남아있던 콩밭열무의 추억을 되살린 것이 지난 2013년부터 시작한 콩밭열무축제다. 일체의 지원 없이 십시일반으로 600만 원의 비용을 모아 치러낸 축제는 2014년부터는 이틀로 늘려 지난해 6회째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축제의 성공 비결은 “마을 축제는 주민들이 행복해지고 지속가능할 수 있으면 돼요. 그래야 우리 것, 내일이란 생각으로 애착이 생기고 내가 즐거워야 또 하고 싶어지는 거잖아요”라는 김 이장의 말에서 드러나듯 꿈과 희망이다. 주민들은 이 역량을 바탕으로 2014~15년 연달아 행복마을콘테스트 도 대회에 도전했다. 첫해엔 아쉽게 2등을 했지만, 재도전 끝에 도 대회 1등을 하고 전국대회에도 나가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와 함께 마을 노인회와 부녀회가 힘을 모아, 마을에서 생산한 콩을 수매해 두부를 만들어 공동 소득사업을 올리고 있다. 딸기축제나 젓갈축제장에서 맛 뵈는 두부는 인기가 좋은 편이지만, 마을 콩이 떨어지면 욕심 내지 않고 생산을 멈춘다. 두부만들기가 본업이 아니라, ‘하나’로 묶어주는 즐거운 소일로 생각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함께 이뤄낸 결과들이 쌓일 수록 주민들과 마을의 목표는 더욱 분명하고 뚜렷해졌다. 첫째는, 공동체 활동의 시작과 가장 큰 보람을 준 콩밭열무축제를 매년 잘 치르는 것. 8월 둘째 주 삼복더위를 전후해 열무가 가장 맛있을 때 축제가 열린다. 그러나 주민 누구 하나 힘든 내색 없이 각자의 힘을 보태 축제를 즐긴다. 둘째는 여기서 더 나가아 하굿둑 건설로 막혀버린 개새미도랑을 되살리는 것이다. “개새미도랑에 참게가 돌아올 정도면 살 만한 농촌이지 않을까요? 생태복원의 최종 목표는 거기까지입니다. 그래서 자손들에게, 마을을 찾는 어린 학생들에게 우리가 어릴 때 경험한 농촌의 기억을 갖게 해 주는 것이죠.” 김 이장의 눈빛엔 꿈과 희망과 함께 열의가 넘친다. 마지막은 환경 정비를 지속해 나가는 것이다. 마을의 숙원사업이엇던 시내로 나가는 직통버스가 작년부터 들어오기 시작했고, 2017년엔 창조적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회관 앞에 공연돔이 설치됐다. 지금까지 바라던 일이 이뤄진 만큼 언젠가 남은 과제도 실현될 거라는 김 이장. 황금빛마을의 꿈과 희망은 여전히 자라고 있는 듯하다.
  • 배관열
  • 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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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부럽지 않은 문화생활 누려요”
  • 작은도서관·영화관 운영, 마을요양원 설립 목표 월량2리 장수마을은 아산시 동북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60여 가구가 살고 있고 주민 대부분이 64세 이상이다. 언제부터인지 마을 입구에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도 커져갔다. 2014년 마을 입구를 또 다시 가로막으려는 공장 때문에 한 목소리를 냈지만 주민들의 힘만으로는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겪은 후 주민들의 사이는 좀 더 끈끈해졌다. 주민들은 장수마을을 ‘사람 사는 마을’로 만들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고, 장수마을을 사람들이 이사 오고 싶어 하는 마을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장수마을을 ‘사람 사는 마을’로 만드는 첫 발걸음은 ‘장수마을 명품마을 만들기 추진위원회’ 조직부터 시작됐다. 하종중 위원장과 20여명의 추진위원은 자주 만나 마을의 발전을 논의했다. 열심히 토론하고 발로 뛴 결과 여러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먼저, 항상 비어있는 마을회관 2층을 도서관으로 개조했다. 취지에 공감하는 각지의 사람들이 도서 6000여권을 기증했고 마을 노인들의 허락과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2014년 12월 ‘장수마을 꿈꾸는 작은 도서관’을 개관했다. 초대 관장은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이덕주 씨가 맡았다. ‘장수마을 꿈꾸는 작은 도서관’은 월 2회 마을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에 평생 영화관에 가보지 못한 어르신들이 많다는 것을 파악하고 농한기에 영화를 상영한다. 매년 10월에는 장수마을 음악회도 개최한다. 문화에 소외된 농촌 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공연을 선보이며 마을 잔치를 여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장수마을 음악회는 올해로 5회째를 기다리고 있다. 매년 5월에는 어버이날을 맞아 어버이날 축제도 개최한다. 2015년에는 ‘아산시 경관공모사업’에 선정돼 마을의 창고를 공연장으로 리모델링하고 마을 곳곳의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는 사업도 진행했다. 주민들의 마을 만들기 활동 참여가 점점 늘어나면서 2016년에는 행자부 사업인 ‘공동체활성화 프로그램 지원사업’과 ‘선행사업’에 선정됐고 이를 통해 마을에서 매년 공연할 수 있는 음향장비 시스템을 구비했다. 장수마을 주민들은 ‘마을 요양원’을 설립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 마을 요양원은 일본 지바현의 ‘바람의 마을’ 같은 노인홈, 그룹홈 성격을 띤다. 장수마을이 꿈꾸는 것은 우리나라 전체로 보더라도 의미있는 시도다. 초고령화 시대로 진입하는 시점에서 장수마을은 발 빠르게 해결책을 찾아 나가고 있다.
  • 배관열
  • 20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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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자원을 활용해 농촌답게 가꿔야”…자립형마을로 나아가는 길
  • 마을 중앙 폐목장을 구심처로 안면송과 함께 소득도 살아나 친환경농업·스마트팜 지속 “슬럼프도 저력으로 극복” 태안군 안면읍, 안면도 내륙을 향해 쭉 뻗은 77번 국도의 3분의 1지점쯤. 섬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간직한 길우지마을이 자리해 있다. 섬 속의 농촌으로 과거부터 전적으로 농사소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 마을에 사람이 찾고, 농촌 자원을 활용한 소득 활동이 번성한 건 지난해까지 마을위원장을 맡았던 김정근 씨 덕분이다. 그는 서울서 학업과 직장생활을 하다 25년 여 전인 지난 1995년 고향을 찾아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기억 속 마을은 안면도 내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었지만 1970년대 문화재 복원사업으로 안명송이 베어 나가고, 마을에 대기업 두 곳의 목장이 들어서며 환경은 황폐해져 갔다. 김 위원장은 “농촌 마을의 저력은 농촌이 가진 자원으로부터 나온다. 도시 사람들이 농촌을 찾는 이유는 농촌다움 때문인데, 농촌이 가진 걸 부정하고 다 부수고 새로 짓는다면 사람들이 올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 그였기에 돌아온 고향의 모습은 아쉽고 안타까움이 강했다. 김 전 위원장은 마을에 내려온 지 15년이 지난 2010년쯤 주변의 권유와 마을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처음 마을사업을 맡아 시작했다. 우선 그가 주목한 건 대기업이 버리고 나간 폐목장터. 목장터가 마을 중앙에 위치에 있어 이곳을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면 주민들이 모이겠다 싶었다. 이와 함께 악취가 풍기던 마을저수지 청소를 시작하고 환경을 정비했다. 그 당시 성과 중 하나가 전국 최초로 마을 공동재활용센터를 만들어, 폐자재를 한 곳에 모아 관리하고 그 판매비용을 마을 기금으로 충당하며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것이다. 작은 변화부터 시작된 마을에선 주민들이 단합력이 강해졌고, 마을사업 2년 만에 충남도 행복마을콘테스트에서 1등을 하면서, 도 대표로 뽑혀 전국대회에 나가 경관분야 동상을 차지하게 됐다. 행복마을 콘테스트 수상 후 마을엔 전국에서 방문객이 몰려들었고, 연간 2000여 명으로 시작된 손님들은 작년엔 유료 체험객만 6000명이 넘었다. 일반 방문객까지는 셀 수도 없다. 프로그램도 학교로 찾아가는 농촌체험, 마을로 와 즐기는 체험, 6차산업 관광체험 등 다양했다. 손님이 오면 자연히 농산물이 팔렸고, 더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도 힘을 얻었다. 김 위원장은 손님맞이와 소득 연계를 위해 농촌체험마을을 본격 구상, 직접 계획서를 쓰고 사비를 들여 맹지를 구입해 길을 만들고 포장해 체험마을을 꾸리기 위한 시설을 갖췄다. 마을을 사유화한다는 말이 나올까, 부지를 마을의 명의로 돌렸다는 그의 말에서 고향과 마을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열정이 느껴졌다. 마을 사업을 준비하면서 또 하나 시도한 것은 친환경농업이었다. 당시 8ha의 땅에 하우스를 지어 시작한 유기농 고추농사는 첫 해 19가구가 연간 16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지금은 약 30억 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한다. 고추로 시작된 친환경농법은 마을의 너른 들을 활용한 친환경 쌀 재배로 이어져, 지금은 태안군과 충남도의 학교급식 및 서울권의 급식에도 납품하면서 안정적인 판로 확보에 성공한 상태다. 그가 끝없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건 “마을사업의 최종 목표는 자립형 마을로 나가는 것”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력이 있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마을이어야 리더가 바뀌고 구성원이 바뀌어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 “충남 어디서보다 가장 농촌다운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 안면도의 아름다운 관광자원과 길우지마을의 풍성한 체험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곳, 5월엔 더욱 아름다운 마을로 많이 와 주세요~!” 애정이 듬뿍 담긴 김 위원장의 당부다.
  • 배관열
  • 20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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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각으로 특성화…충남 대표 예술마을 ‘우뚝’
  • 공동으로 텃밭가꿔 농산물 나눔, 다양한 예술프로그램 주민 인기 보령시 남포면은 여느 농어촌마을처럼 젊은층은 도시와 시내로 떠나며 마을이 고령화 되고 , 새로 유입되는 귀농·귀어인과 먼저 살고 있던 주민들 간 삶의 방식이나 의식 차이 등으로 이웃 간 단절이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지역 일에 무관심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이에 남포면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화합의 한계를 실감, 전문적인 컨설팅 교육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7년 충남형 동네자치 시범공동체 사업을 알게 됐다. 지속적인 교육과 컨설팅을 통해서 주민자치와 주민자치위원의 역할에 대해 배우고, 선진지 견학을 통해 주민자치위원 스스로 지역 내 현존하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마을 일에 무관심했던 주민자치위원들이 주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마을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마을 주민들은 2009년부터 마을 텃밭을 함께 가꾸기 시작했다. 고추, 오이, 호박구마 등을 공동으로 재배해 각 마을 회관, 독거노인, 취약계층에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를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주민들의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위해 주민자치 프로그램 일환으로 서각교실, 난타교실, 풍물교실도 운영 중이다. 대표 프로그램인 서각교실은 제석2리 서각체험교실을 활용해 주민이 직접 만드는 체험형 주민자치 프로그램이다. 남포면 주민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수강생이 찾아올 만큼 인기가 좋다. 현재까지 7기 수강생을 모집했으며 선배가 후배를 일대일로 지도하면서 취미활동을 넘어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하고 있다. 남포면 주민자치위는 주민자치프로그램과 농식품부 마을만들기 사업을 연계해 제석2리 ‘제석골 서각예술제’, 월전2리 ‘용두솔밭어울림축제’ 등 마을축제에 공연 및 전시, 각종 재능기부 등을 후원하고 있다. 제석골 서각마을은 2018년 8월 농식품부 ‘2019년 마을 자율개발사업’에 선정돼 향후 3년 동안 사업비 5억원을 들여 서각과 농촌체험을 중심으로 한 농촌관광체험을 운영할 예정이다. 또 2022년부터는 마을종합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농촌인성학교를 설립하고 체험휴양마을 지정을 목표로,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배관열
  • 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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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모양 호수 품고, 누에로 행복을 짓는 마을
  • 보령 은고개마을, ‘깨끗한 환경’ 만들기로 시작 뽕과 누에로 꿈꾸는 복지마을 2018년, 은고개뽕센터 건립 “이제 날아오르기만 남았다” ‘푸른 담쟁이가 우거진 곳’이란 뜻의 보령시 청라면. 마음을 울리는 이름 덕인지, 청라면엔 유독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닌 마을들이 여러 곳이다. 그중에서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고개가 많다고 해 음고개 또는 은고개로 불린 마을은 초입에 자리한 한반도 모양의 은고개 호수를 품고 있는 곳이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좁은 농지에 소규모 농업만 겨우 유지되던 곳, 이 때문에 젊은 사람은 직업을 찾아 마을을 떠나고, 연로한 어르신들만 남아 있던 곳에 변화가 시작된 건 귀농·귀촌인이 들어오면서부터다. 은고개마을의 변화는 이주민들이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2012년에 보령시 희망마을 만들기 대회에 나가 우리 마을이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마을 진입로며 저수지에 버려져 있던 쓰레기와 퇴비, 낡은 농기계 등을 싹 다 치웠습니다. 쓰레기를 버리던 장소들을 주민들과 합의해 정리하고, 그곳을 전부 꽃밭으로 만들었어요. 주민 역량교육을 계속한 결과 지금은 마을에서 쓰레기를 보기 어려워요.” 마을추진위원장 권영진 씨의 말이다. 2011년 연말쯤 마을에서는 휴경지에 뽕나무를 심어 뽕단지를 조성, 주민들의 소득사업으로 삼자는 제안이 나왔다. 계획을 구체화해 2013년 희망마을 만들기 대회에 나갈 때의 최종 목표는 ‘노후복지 뽕나무단지’로 확정됐다. 이 계획으로 도 대회에 나가 2등에 선정돼 받은 상금 8000만 원은 11,240㎡의 뽕단지를 조성하는 밑거름이 됐다. 이미 마을에선 2012년부터 자체적으로 양잠연구회를 만들어 주민 17명의 힘으로 출자금을 마련한 상태였다. 이 저력을 바탕으로 2013년엔 보령양잠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조합원 자격을 보령시 전체 주민으로 확대했다. 이런 노력 끝에 2014년 행복마을 콘테스트 전국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얻었다. 위원장을 맡은 후 가장 보람된 기억이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 순조롭게 진행되던 일은 2014년 누에를 치기 시작하면서부터 위기에 부딪힌다. 첫해엔 경험 부족으로 누에가 추위에 벌벌 떨며 쪼그라드는 걸 지켜봐야 했다. 권 위원장과 주민들은 좌절하지 않고 다시 활로를 찾았다. 누에를 키우는 것과 별개로 뽕잎을 가공한 2차 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나아가 뽕떡과 뽕칼국수 등의 먹거리를 마련하고 누에 체험키트를 마련해 체험마을로의 도약을 이뤘다. 올해부터는 마을의 체험프로그램과 먹거리를 널리 알리고, 적극적으로 손님 맞이에 들어갈 계획이라는 은고개마을. 다른 곳에선 쉽게 맛보기 힘든 초록 빛깔의 먹거리가 준비돼 있다. 뽕과 누에를 대표 특산품과 체험거리로 내걸고, 한반도 모양의 은고개 호숫가를 데크 깔린 꽃길로 가꿔 또 하나의 볼거리로 만들겠다는 권 위원장의 꿈이 실현되는 날이 기다려진다.
  • 배관열
  • 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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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발전 보단 ‘문화가 꽃피는 마을’로
  • 보령시 주교면 주민자치위원회, 문화교실·배다리영화관운영 화합한마당 잔치로 화합 도모 보령시 주교면에는 국내 최대 규모 화력발전소인 한국중부발전 보령화력본부와 신보령 1·2호기가 자리한다. 화력발전과 관련해 보령시가 담당하는 역할의 비중은 전국적으로도 상당하지만 마을·계층 간 갈등 요소로 존재해 왔다. 주교면 주민들은 이러한 상황을 인지했고 2017년 제6기 주민자치위원회를 출범하면서 ‘문화가 꽃 피는 주교면’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주교면민 화합한마당 잔치’ 개최, 찾아가는 문화교실 운영, 배다리 영화관 개관 등으로 화합과 소통을 도모하고 있다. 주교면민 화합한마당 큰 잔치는 주교면 주민자치위원회가 보령정심학교와 공동 주관했다. 유관기관이 협업으로 각자 맡은 일을 자치적으로 수행하고 지역 주민의 자원봉사를 이끌어낸 결과, 주민화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랑의 음악회, 민속경기, 노래자랑, 마음오케스트라 연주, 합창, 그림 전시회, 국화재배 작품 발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돋보이는 행사였다. 주교면민 화합한마당 큰 잔치는 주민들에게 문화예술 창작과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행사를 주도적으로 진행함으로써 발전소 주변지역이라는 소외감을 자부심으로 탈바꿈시켰다. 주교면 주민자치위원회는 2017년부터 찾아가는 문화교실도 시범 운영 중이다. 신대3리 70대 이상 노인들은 매주 화요일 2시간씩 꾸준히 부채춤을 연습했고, 지난 2017년 10월 ‘제2회 동네자치한마당 시·군 주민자치경연대회’에서 보령시 대표로 부채춤을 선보여 박수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찾아가는 문화교실을 5곳으로 확대, 주교3리 웰빙댄스, 신대4리 한국화, 은포3리 캘리그라피, 은포4리 난타, 송학1리 에어로빅 프로그램을 개강해 100여 명이 여가생활을 즐기고 있다. 주교면 주민자치위는 이밖에도 행정복지센터에서 매월 넷째주 목요일 배다리 영화관을 개관, 가족영화를 상영하며 주민들의 문화행복지수를 높이고 있다. 주민자치위 한 관계자는 “‘내 지역은 우리가 만든다’라는 마음으로 지역의 주인이 되어 문화가 꽃피는 주교면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진정한 주민자치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주민들과 소통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 배관열
  • 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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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춤’ 추며 주민 화합 ‘똘똘’
  • 공주 월송동 주민자치위원회, 각종 봉사활동으로 솔선수범 공연 연습하며 유대감 ‘끈끈’ 공주시 월송동은 백제 때 웅천, 신라 대 충전주 웅주, 고려·조선대에는 공주목에 속했다. 서기 475년부터 6대 64년간 백제의 왕도로 내려온 만큼 관련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백제의 전통과 문화를 바탕으로 백제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건강하고 신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월송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의 문화·복지·편익 증진, 주민의 자치활동 강화, 지역공동체 수행을 목적으로 지난 2017년 2월에 설립됐다. 공주시는 모든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 중 가장 늦게 설립됐지만 지난 1년 간 공주시의 여러 행사와 백제문화제에서 수차례 공연을 하는 등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월송동 주민자치위는 현재 김인옥 위원장과 박정란 부위원장을 포함해 25명의 주민대표 위원들로 조직돼 있다. 기획분과, 봉사분과로 나뉘어 어르신 행복한마당 행사에서 서빙, 음식만들기 및 설거지, 청소 등 자원봉사를 하거나 무령왕릉과 공산성 입구 등에서 급수 봉사를 하는 등 공익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또 쓰레기 수거 등 환경정화 활동, 시에서 독려하는 환경캠페인 등을 전개하는 한편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을 돌보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월송동 주민자치위원회의 가장 큰 자랑이자 특기는 ‘백제 춤’이다. 충남도 주민자치센터 특성화 시범사업에 선정되며 ‘전통민속 백제의 춤 배우기’를 진행했고, 다양한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주민 화합을 이끌어냈다. 백제춤은 공주대학교 무용학과 최선 교수의 협조를 받아 2017년부터 연습에 들어갔다. 월송동 호태산에 위치한 한국수자원공사 공주정수장 야외무대에서 첫 연습을 진행했고, 월송동민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80여명의 주민들이 함께 했다. 매회 최소 80명 이상, 많게는 150여명까지 함께한 백제춤 프로그램은 공주시의 다른 읍·면·동에도 소문이 퍼지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여러 행사 및 축제에 월송동 백제춤팀이 초정됐다. 백제춤 프로그램이 개설되고 진행한지 3달째가 되던 2017년 9월 ‘제63회 백제문화제’ 기간 중 공산성 내 공연장에서 월송동 주민들과 축제 관광객들이 모두 어우러져 함께 백제춤을 추는 등 총 세 번의 공연을 선보였다. 이에 공주시민은 물론이고 국내 관광객 및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가지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설집된지 1년이 갓 넘은 신생 단체인 만큼, 월송동 주민자치위원회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독립적인 공간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타 읍면동에 비해 프로그램 수가 다소 부족하지만 1~2년 내에 ‘월송복합문화센터(가칭)’가 개관하면 좀 더 창의적이고 신선한 도전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충남형 동네자치 성과와 방향’사례집
  • 배관열
  • 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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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만대…그래도 해마다 또 간대”
  • 태안군에서도 최북단, 이원반도의 끝자락. 바닷가 마을로 가는 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꼬불꼬불한 산길을 돌고돌아 들어가면 농어촌의 풍경이 조화를 이룬 조용한 시골마을이 나타난다. 예부터 ‘너무 멀어 사람들이 가다가 만다’는 유래서 이름 붙었다는 마을, 작은 항구를 끼고 만대어촌체험마을과 농촌체험마을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김진묵(60) 대표는 지난 2006년, 처음으로 ‘만대’란 이름을 사용해 어촌체험마을 지정·고시를 받고 운영을 시작했다. 15년이 흐른 지금은 전국에서 체험객이 찾는 명소가 됐지만, 첫 걸음을 떼기는 쉽지 않았다고. “처음 체험마을 운영을 시도할 때 주민들 반대가 심했어요. 그동안 자원을 잡아서 파는 것만 알았던 주민들이 왜 부산스럽게 만드냐고, 그냥 잡아서 팔면 돈 되는 걸 괜한 짓 한다고 불만도 있었죠.” 2016년까지 20년간 만대항의 어촌계장을 지냈던 김 대표는 마을의 45가구 주민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에 나섰다. 마을 발전을 위해서는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고, 주민들도 펜션과 식당 운영 등으로 소득이 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머물러 놀거리가 생겨야 다음에 또 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마을사람들이 체험마을 운영에 적극 참여한 건, 수익금을 나눠 배당이 생기고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한 주민들이 소소하게나마 인건비를 벌어 농외소득을 올리면서부터다. 만대마을의 경우 평균 연령 70대에 달하는 주민들 대부분이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석화굴을 채취해 발생하는 수익으로 한 해를 나는 편이다. 그런데 각종 체험은 5월부터 11월까지 이뤄지다 보니, 굴을 따지 않는 나머지 시기에 소일도 하며 수익도 올릴 수 있게 됐다. 천혜의 갯벌이 펼쳐진 만대마을이지만, 실패와 각성의 경험도 있었다. 지난 2007년 태안반도를 덮친 기름 유출사고 이후, 사고 지점에서 비교적 먼 편인 만대의 갯벌에도 기름이 스몄고 그 때문에 조개류의 번식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또 마을에 조금씩 나던 맛조개도 체험 프로그램으로 개발했으나, 2년여 사이에 온 구멍마다 소금을 들이붓다시피 하는 통에 그만 자취를 감춰 버렸다. 천연자원인 바다도 자생의 시간은 필요했던 셈이다. 최근엔 체험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선호도 점점 바뀌고 있다. 예전엔 펜션에 머무르며 휴양하는 관광객들이 여가를 보내려 체험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펜션보다 야영을 선호하며, 체류형 관광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김 대표는 이에 맞춰 체험프로그램의 다양화와 내실 있는 구성을 구상 중이다. 마을 폐교를 숙박·취사·체험이 가능한 복합 야영장으로 탈바꿈시키고, 3~40명 정도가 승선할 수 있는 규모의 배를 마련해 마을 자체적으로 가로림만 생태관광 체험을 시도하는 것이다. 굴 양식장이며 신두리 해안사구 등 자연 경관을 돌아보며 볼거리를 만들고, 마을로 돌아와 갯벌, 독살, 낚시 등의 엑티비티를 즐기는 1박 2일 혹은 그 이상의 체험을 꿈꾼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대산과의 연륙교 건설을 통해 마을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는 김 대표. 비록 예전엔 ‘너무 멀어 가다가 만다는 만대가, 이젠 멀어도 또 간대는 마을’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 배관열
  •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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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바꾼 ‘4계절 축제의 마을’
  • 험한 산세와 울창한 숲으로 충남의 알프스란 이름이 붙은 칠갑산. 그 자락에서도 가장 깊숙하고 높은 곳에 자리 잡은 한 마을이 있다. 마을이 천장처럼 높아 ‘천장리’라 불리던 곳, 지금은 사계절 축제가 펼쳐지는 마을로 잘 알려진 알프스마을이다.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으나 마을 대부분이 칠갑산에 가려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이라 농사를 짓는다 해도 작황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20여 년 전 40대 초반의 나이에 고향으로 귀농한 황준환 위원장은 당시의 마을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공동체사업은 새마을사업 이후 해 본 경험이 없는 마을이었어요. 마을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 우리 마을에 오는 사람은 길을 잘못 들어 어쩌다 오게 된 사람이 전부였죠.” 황 위원장은 주민들마저 고령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농업으론 마을의 기회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 칠갑산과 천장호란 자연경관을 활용해 마을을 관광지로 변모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때가 2004년, 마침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며 계획은 탄력을 얻었다. 첫발을 디딘 후 2년 동안, 마을엔 도농교류센터가 들어서고 마을 운영위원회가 결성됐다. 그러나 2년 후 중간평가서 마을은 최하위로 평가되며 패널티를 받게 된다. 황 위원장과 주민들은 다시 힘을 모아 2007년 마을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이듬해 겨울 처음으로 얼음분수축제를 개최했다. 축제가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던 건 아니다. 첫해엔 관광객이 거의 오지 않았고, 지금처럼 전문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지도 못했다. 다만 방문해 준 손님들이 뭐라도 할 수 있도록 피워둔 모닥불에 밤이나 고구마를 내어 구워 먹도록 하고, 그게 인기를 얻다 보니 본격적으로 판매·체험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됐다. 계절마다 열리는 마을의 축제나 그 속의 프로그램들은 모두 이처럼 매년 반복되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기회로 발전해 왔다. “박은 봄에 심어 두면 여름에 손님들이 왔을 때 그늘을 만들 수 있어요. 준비하면서 세계엔 다양한 모양의 박이 있는 걸 알게 되고, 4년간 박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종자를 모으고, 잘 기르는 방법을 연구했죠. 그렇게 세계조롱박 축제를 2011년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알프스마을의 축제는 단순히 1회성 혹은 이벤트로만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구상을 위한 발판이 됐다. 곧 조롱박 축제를 보고 간 고3 학생이 박에 ‘수능대박’을 기원하는 글귀를 새긴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다음해엔 ‘수능대박 페스티벌’을 별도로 추가한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 축제 1주일 후 불어닥친 태풍에 박이 다 떨어져 버리고, 어쩔 수 없이 박 속만이라도 파서 처분하려니 누군가 몽땅 사들였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박으로 화장품을 개발하는 연구원이었다고. 이에 황 위원장은 박을 활용한 화장품 개발을 추진, 마을에 뷰티센터 건립을 이끌어내고 축제를 위해 기른 박을 추가 소득으로 연계시켰다. 이렇게 마을사업이 소득으로 이어지며, 현재 법인에 22명의 주민들이 정직원으로 소속돼 있다. 지역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건 물론이고, 마을의 소득을 재원 삼아 지역 학생들을 후원하는 장학사업도 지속 중인 알프스마을. 알프스마을의 앞으로의 꿈은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자원을 잘 보존해 내면서, 이를 바탕으로 지역에 공헌해 더불어 잘 사는 고장을 만드는 것이다. 17년을 달려온 마을사업의 여정이 어디까지 지속될지 궁금하다.
  • 배관열
  •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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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시작은 늦었지만 우리 목표는 최고”
  • - 주민 손끝으로 꽃피운 전설 - 이야기가 있는 5花 갤러리 등 - 폐자원이 경관이 된 내력 돌고개솟대마을은 마을사업의 후발주자다. 온 국토에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 마을 앞으로 고속도로와 고속철도가 뚫렸지만, 교통 편의가 주는 혜택보다 농지가 끊기고 경관이 훼손되는 부작용이 더 컸다. 마을 출신으로 평생 고향을 지켜온 정기석(66) 이장은 37년 전 최연소 이장이 됐다. 당시엔 생업에 집중하느라 여력이 없다가 20여 년 전 다시 이장직을 맡으면서 마을의 앞날을 고민하게 됐다고. 정비와 활성화를 고민하던 정 이장의 손을 맞잡은 건 12년 전 마을로 귀촌한 백경용(70) 씨다. 두 사람이 합심해 2014년부터 살기 좋은 희망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역량을 키우고, 2015년부터 아름다운 농촌 만들기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 주민들과 논의를 거쳐 선택한 콘텐츠가 솟대와 해바라기였다. 솟대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고, 해바라기는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개화기간이 길고 씨를 활용한 상품성을 꾀할 수 있어서다. 경관 조성을 위해 처음엔 마을로 들어오는 여러 갈래 길에 각각 테마에 맞는 벽화를 그리고, 솟대와 해바라기를 하나하나 손수 만들어 설치했다. 한켠엔 들꽃길을 조성하고 해바라기밭을 꾸미는 한편, 마을 가운데 방치된 폐가는 소유주의 도움을 얻어 정원갤러리로 변모시켰다. 이 과정에서 백 위원장의 고민은 재료의 수급과 마련이었다. 75세 이상 고령층이 대부분인 주민들에게 재료비를 부담시킬 수도 없었고, 마을 전체를 꾸미자면 적잖은 재료로는 감당이 어려웠다. 고심한 끝에 찾은 정답은 마을 경관을 해치던 각종 폐자원들. 페트병은 해바라기 꽃잎이 되고, 계란포장용기는 일일이 오려 잎으로 바뀌었다. 작품을 전시할 액자는 신문을 돌돌 말아 여러 겹 겹쳐 만들고, 캔고리로 벽고리를 만들었다. 손자들이 먹고 남은 요구르트병은 솟대의 몸통이 되고, 빈 조개껍질도 저마다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지난 2016년에는 공들여 가꾼 작품과 경관을 주민들만 보고 넘기기가 아까워 처음으로 해바라기 축제를 개최했다. 행정의 도움 없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힘을 모아 700여 명이 찾는 축체를 치러낸 경험은 자신감과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특히 도내의 다른 선진지 견학에서 보고 느낀 아쉬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추진한 결과가 외부의 호평으로 돌아오자, 마을사업은 동력을 얻었다. 이에 지난해엔 마을의 여러 경관을 ‘5花 갤러리’란 이름으로 묶어냈다. ‘5花 갤러리’는 마을에 전해 오던 오화지지(五花地之) 전설에서 유래한다. ‘하늘의 옥황상제가 다섯 선녀에게 명하길, 각자 마음에 드는 곳에 내려가 인간을 퍼트리라고 했다. 그중 한명인 들꽃선녀는 야화리를 택해 들꽃을 퍼트렸다는 것이다.’ 다섯 가지 테마를 주제로 한 솟대갤러리, 해바라기 정원갤러리, 이야기담장 갤러리, 마을정원 갤러리, 모둠 창작 갤러리 조성을 끝냈다. 올해는 예년보다 일찍 6월 하순경 제4회 해바라기 축제를 준비 중이라는 마을. 주민들의 화합 잔치이면서 자발적 힘으로 가꿔낸 자랑거리를 선봬는 축제 자리가 기다려진다.
  • 배관열
  • 201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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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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